[독서로 구술잡기]‘처절한 정원’…역사의식-도덕심 자극

  • 입력 2005년 4월 22일 16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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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절한 정원/미셸 깽 지음·김인숙 옮김/112쪽·5800원·문학세계사

한국 중국 일본 등 3국이 연일 어수선하다. 역사를 왜곡하는 일본의 도발이 이웃 국가들의 강한 분노를 자아내고 있다. 그런데 일제강점기와 임진왜란이 가끔 헷갈리기도 한다는 요즘 청소년들에게 동아시아 3국의 들끓는 현안은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우리는 어떤 소중한 가치를 위해 분노해야 하는지, 청소년들의 정신적 성장판을 자극해 줄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역사의식과 도덕심을 자극하는 데 적절하다. 이 책은 어린 아이의 시각에서 소박하고 유쾌하게 이야기가 전개되면서도, 눈물이 나도록 가슴이 묵직한 한 편의 추리소설이다.

주인공은 마치 탐정이 사건을 수사하듯, 아버지의 삶을 회상한다. 초등학교 교사인 아버지는 주말마다 어릿광대 분장을 하고 어김없이 자원봉사를 하러 간다. 주인공은 이런 아버지가 참 못마땅하다. 그러나 아버지의 그 기이한 행동이 나치 치하에서 레지스탕스 활동을 하다가 겪게 된 ‘어떤 사건’과 관계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안다. 아들은 아버지의 삶이 얼마나 품위 있게 속죄하는 것이었는지를 깨닫는다.

그리고 1999년. 프랑스에서는 뒤늦게 나치 협력자로 드러난 모리스 파퐁에 대한 재판이 진행된다. 성인이 된 주인공은 아버지가 생전에 입었던 광대 복장을 하고 방청석에 들어간다. “이 세상에 진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희망을 가질 수 있겠는가?” 주인공은 아버지가 그토록 부활시키고 싶어 했던, ‘전쟁의 고통을 안고 간 영혼들’의 이름을 소중히 간직하겠다고 조용히 되뇐다.

이 책은 분량은 짧으면서도 함축된 의미가 많아 독서 토론을 하기에 적합하다. 학생들이 일제강점기 암울했던 시절을 과거가 아니라 ‘현재와 대화’하도록 해야 한다. 학생들은 “인류에 대한 책임, 인간의 존엄성, 도덕에 따른 행동이 어느 시대의 법률이나 명령보다 우선한다”는 점을 토론을 통해 깨닫게 될 것이다.

독일 병사 베른이 보여 준 포로에 대한 친절은 시대의 잔혹함에 고뇌하는 ‘인간의 양심’을 느끼게 해 준다. 전쟁은 수많은 인간관계를 본의 아니게 가해자와 피해자로 중첩시킨다. ‘양심과 용기’만이 진정한 ‘용서와 화해’를 가능케 하는 실마리가 된다. 일본의 겸허한 반성을 요구하는 시대의 목소리를 청소년들이 고민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학생들이 또래와 토론하면서 인간 행위의 이면에 담긴 의미와 맥락을 탐색하고, ‘역사의 진실과 진정한 화해’에 관해 다시 생각해 보기 바란다. 우리가 책을 읽는 목적은 ‘많이 읽는’ 데 있지 않고 ‘좋은 사고’와 ‘옳은 말’을 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권희정 상명대 부속여고 철학·논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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