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가판시장 반세기만에 “아듀”

  • 입력 2005년 3월 31일 19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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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체 홍보담당 직원 등이 31일 오후 6시 반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 1층 로비에 쪼그리고 앉아 가판 신문을 유심히 보고 있다. 그러나 이 모습도 각 신문사의 잇단 가판 폐지에 따라 곧 사라지게 된다. 전영한 기자
기업체 홍보담당 직원 등이 31일 오후 6시 반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 1층 로비에 쪼그리고 앉아 가판 신문을 유심히 보고 있다. 그러나 이 모습도 각 신문사의 잇단 가판 폐지에 따라 곧 사라지게 된다. 전영한 기자
31일 오후 6시 반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 1층 로비가 시장통처럼 북적댔다. 기업 홍보실 직원 등 70여 명이 막 배달된 1일자 조간신문 가판을 로비 바닥에 펴놓고 살펴보고 있었다. 건물 바로 앞 인도에는 신문을 실은 오토바이 100여 대가 분주하게 오갔다.

하지만 이런 활기찬 모습도 며칠 후면 볼 수 없게 된다. 본보를 비롯한 여러 신문사들이 4월 들어 가판을 잇달아 폐지하면서 50여 년의 역사를 이어오던 일간지 가판시장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가판은 발행일자 전날 오후 6시경 인쇄해 서울 시내 일부에만 배포하는 초판 신문을 말한다.

각 신문사가 찍어낸 초판 신문들은 동아미디어센터 앞으로 모인다. 이 중 6000여 부는 관공서 기업체 등에, 5000여 부는 서울 시내 중심가 가두판매대로 배달된다. 일부 기업의 경우 배달로 가판 신문을 받아보는 대신 직원이 직접 미디어센터에 나와 챙긴다.

본보는 2일자부터 가판을 폐지하며 경향신문(1일자) 한겨레신문(4일자) 세계일보(날짜 미정)도 가판을 폐지한다. 이에 앞서 중앙일보는 2001년 10월 가판을 없앴으며 조선일보도 지난달 7일자부터 가판을 폐지했다. 이에 따라 한국일보 서울신문 매일경제 한국경제와 일부 전문지만 가판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황선규(44) 동아일보 가판실 사장은 “당분간 남은 신문으로 가판시장의 명맥을 잇겠지만 사실상 가판시장은 사라진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고등학교 2학년 때 신문팔이를 시작해 30년 가까이 가판시장에서 일했는데 아쉽게 됐다”고 말했다.

3년째 매일 가판 신문을 챙겨온 KTF 언론홍보팀 현병렬 차장은 “홍보맨으로 가판을 통해 회사 관련 기사를 미리 확인할 수 없어 부담스럽지만 개인적으론 (가판 발행 중단이) 언론이 가야 할 방향으로 가는 것 같아 환영한다”고 말했다.

가판시장은 6·25전쟁 당시 부산으로 내려갔던 정부가 서울로 환도하면서 차츰 형성되기 시작했다. 당시엔 석간신문이 주류를 이뤄 낮 12시 무렵 석간신문이 나오면 서울시내 중심가인 광화문 사거리 일대에 모여 있던 ‘신문팔이 소년’들이 50∼100부씩 들고 거리로 흩어져 팔곤 했다.

1980년대 초에는 오후 3시경 나오는 석간신문 2판과 오후 6시경 나오는 조간신문 가판을 정부기관 등이 구독하면서 저녁 가판시장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초기엔 광화문 교보빌딩 앞에 가판시장이 형성돼 신문 분배가 이뤄지다가 1983년 당시 동아일보사 주차장(현재의 동아미디어센터 자리)으로 자리를 옮겼다. 1990년대 초 동아일보 중앙일보 등 석간신문이 조간으로 바뀌면서 저녁 가판시장은 더욱 활성화됐다. 2000년 1월 동아미디어센터 빌딩이 들어서면서 자연스레 1층 로비가 가판시장의 장터로 자리 잡았다.

황 사장은 “그동안 가판시장에서 일했던 300여 명이 가판시장이 없어짐에 따라 이제 새로운 일자리를 찾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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