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호사카 유지]韓-日관계, 여성이 풀어라

  • 입력 2004년 12월 20일 18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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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내각부가 최근 일본인 성인 남녀 3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한국에 친밀감을 느낀다는 비율이 지난해에 비해 1.7%포인트 높아진 56.7%를 기록했다. 이것은 일본 정부가 1978년 조사를 시작한 이래 가장 높은 수치다. 그에 반해 ‘한일 관계가 괜찮다고 생각한다’는 견해는 4.3%포인트 낮아져 호감도 증가가 관계 개선으로는 이어지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모처럼 찾아온 한일 간의 좋은 관계를 계속 유지하고 그것을 두 나라의 관계 개선으로까지 이끌어갈 방책은 없는 것일까.

▼日여성이 일으킨 한류열풍▼

그런데 현재 일고 있는 일본의 한류 열풍은 여성을 중심으로 한 붐이다. 이 한류 붐은 2001년 1월 선로에 떨어진 취객을 구하려다 죽은 이수현 씨로부터 시작됐다. 이 사건은 한국인, 그리고 한국 남자가 따뜻한 인간애와 큰 용기를 갖고 있음을 일본인들에게 강하게 각인시켰다. 한국 남자에 대한 일본인의 호감은 월드컵의 한국-이탈리아 전에서 다시 확인됐다. 상대방에게 폭력에 가까운 반칙을 당하면서도 기적적으로 승리를 이끌어낸 한국 선수들에게 많은 일본인들이 깊은 감명을 받은 것이다.

이런 흐름이 ‘겨울연가’로 이어졌고 일본 여성들이 배용준 씨를 통해 다시 한번 한국 남자의 따뜻한 마음에 끌린 것이다. 그들은 한국인들이 시를 애독한다는 것, 한국의 어머니가 자식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한다는 것 등 드라마를 통해 한국문화를 배우고 있다.

돌이켜 보면 일본 여자가 한국 남자를 사모한 역사는 의외로 길다. 예를 들면 조선인 혁명가 박열과 살았던 가네코 후미코(1903∼1926)는 치마저고리를 입고 일본 법정에 섰고 당당하게 한민족과의 공동투쟁을 주장했다. 조선 왕조의 마지막 왕세자비 이방자 여사도 일제의 속셈과 달리 한국을 사랑한 일본 여자였다. 일제강정기에 일제는 한국인과 일본인의 결혼(내선결혼)을 국책으로 추진했다. 1940년 이후 한반도에서 매년 1500∼2000쌍 정도 한일 간의 국제결혼이 이뤄졌다.

일제는 특히 한국 남자와 일본 여자의 결혼을 장려했고 90% 이상이 그런 커플이었다. 일본 여자가 아이를 일본식으로 교육시키게 하기 위해서였다. 북한 남자와 함께 북송선을 타고 북한으로 건너간 일본 여자들은 6000명 이상이라고 전해진다.

일본의 영웅 프로레슬러 역도산은 북한 출신이다. 그의 부인 다나카 게이코 씨는 23세의 나이로 그와 결혼했다. 11개월 후 역도산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 그녀는 그 뒤 온갖 고생을 다 겪었지만 “다시 태어나도 역도산과 결혼하고 싶다”고 말한다. 많은 일본 여자들이 이처럼 한국 남자를 근·현대 역사 속에서 사모해 왔다.

그러므로 한일관계를 푸는 열쇠의 하나는 분명히 여성들이다. 여성들은 모성애로 차별이나 멸시, 대립 등을 초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두 나라 여성들이 아직 화해하지 못한 두 나라 남자들을 화해시킬 가능성을 쥐고 있다. 그러므로 두 나라 여성들이 중심이 돼 각계각층에서 연대할 필요가 있다.

▼양국 여성 연대땐 남성화해▼

일본사람들이 역사 속에서 형성시켜 온 한국멸시 사상을 버리는 것은 물론 한국에서도 일본을 역사적으로 멸시해 온 ‘소중화주의’를 버려야 한다. 남자들의 세계는 양보와 상호존중보다 경쟁의 세계다. 요즘 한류의 무대 뒤편에서도 한국 측이 한류 관련 비즈니스에서 너무 비싼 로열티를 요구한다는 불만이 있다. 사실이든 아니든 한류가 거품으로 사라지지 않고 일본에서 계속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한꺼번에 다 가지려 하지 말고 미래를 위해 서로 조금씩 양보해 가는 합리적인 사고가 절실하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에도 일본의 공영방송 NHK에서는 가장 중요한 저녁 시간대가 한류 붐 특집으로 몇 시간째 이어지고 있다.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일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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