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展 서울개최 숨은 주역 김려춘 교수 인터뷰

  • 입력 2004년 12월 12일 18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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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프 톨스토이의 육필 원고를 러시아 국외에서 드물게 전시하는 ‘톨스토이전-살아 있는 톨스토이를 만난다’가 서울에서 열리게 된 데는 러시아 톨스토이학회의 유일한 외국 출신 회원인 김려춘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세계문학연구소 교수(76·사진)의 도움이 컸다. 김 교수는 비탈리 레미조프 러시아 국립 톨스토이박물관장을 설득해 이 박물관에서 소중하게 보관해 온 귀중 자료들을 이 전시에 제공하도록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11일에는 서울역사박물관에서 ‘톨스토이와 동양’을 주제로 강연도 했다.

함경남도 함흥 출신인 그는 어린 시절 톨스토이 문학에 빠져 1946년 러시아 돔스크대 러시아 문학부로 유학을 간 후부터 ‘톨스토이학(學)’을 평생 연구해 오고 있다. 그는 특히 “톨스토이가 말년에 노자(老子)의 ‘도덕경’을 항상 곁에 둘 정도로 동양정신에 심취해 있었다”며 “특히 한국에도 적잖은 관심과 애정을 가졌다”고 말했다.

“톨스토이는 1906년 8월 고향인 야스나야 폴랴나에서 손님들과 만나 ‘한국인은 동양적 의미에서 볼 때 대단히 문명화된 국민’이라고 말했지요. 한국을 강탈한 일본의 이토 히로부미에 대해서는 ‘타락한 무도(無道)의 인간’이라고 비난했습니다.”

그는 “톨스토이의 주치의였던 슬로바키아인 두샹 페트로비치 마코비츠키가 기록한 ‘야스나야 폴랴나 일기’를 보면 이 같은 내용들이 고스란히 나와 있다”고 전했다. 이 밖의 자료들을 보면 톨스토이는 1894년 청일전쟁이 한창일 때 아들딸들에게 세계지도를 펼쳐 조선의 위치를 알려주며 안타까워하기도 했다는 것(이 지도는 이번 전시회에 진열되고 있다). 또한 반전 팸플릿 ‘반성하라!’에서는 ‘내가 만일 러시아 차르(황제)라면 한국 만주에서의 영지 소유권을 거절할 것’이라는 글을 쓰기도 했다.

그는 “최근에는 톨스토이를 직접 만난 한국인이 있는 것 같아 조사해 보고 있다”며 “1928년 10월 톨스토이 탄생 100주년을 맞아 한국 잡지 ‘신생(新生)’에 ‘두옹(杜翁·톨스토이)을 찾아’라는 글이 실린 점에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 글 필자는 ‘EAS生’이라는 필명을 쓰고 있으며, ‘독일에서 살던 한국 종교 관계인’으로 톨스토이와 여러 번 만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톨스토이와 익명의 한 한국인의 수차례 만남은 ‘야스나야 폴랴나 일기’에도 기록돼 있으며 이 한국인이 ‘ESA生’인 것으로 보인다고 그는 덧붙였다.

그는 “젊어서 숨진 친형 ‘려호’ 씨도 톨스토이에 빠져 있었다”며 “그의 몫까지 살면서 톨스토이를 공부하겠다는 뜻으로 내 필명을 ‘려호’로 쓴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에 톨스토이가 처음 소개된 것은 1906년 ‘조양보(朝陽報)’에서”라며 “이제 곧 ‘톨스토이 100년 서지 작업’을 한국에서도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제의했다.권기태 기자 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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