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생존外交 다시보자”

  • 입력 2004년 11월 7일 18시 01분


코멘트
국제정치학계는 과거의 ‘제국’인 중국과의 조공체제 속에서 나름의 생존전략을 모색한 조선의 역사를 통해 현재의 제국인 미국, 미래의 제국인 중국에 대한 전략을 찾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17세기 초 중국 명나라로 파견된 사신행렬을 그린 ‘항해조천도’의 일부. -사진제공 국립중앙박물관
국제정치학계는 과거의 ‘제국’인 중국과의 조공체제 속에서 나름의 생존전략을 모색한 조선의 역사를 통해 현재의 제국인 미국, 미래의 제국인 중국에 대한 전략을 찾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17세기 초 중국 명나라로 파견된 사신행렬을 그린 ‘항해조천도’의 일부. -사진제공 국립중앙박물관
■‘中제국과의 관계’연구활발

《국제정치학계의 요즘 최대 화두는 ‘제국(帝國)’이다. 냉전의 양극 중 하나였던 소련이 붕괴된 이후 미국은 이제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유일의 제국인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제국인 미국과의 관계 정립은 한국의 생존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한국국제정치학회는 이런 현실을 반영해 다음달 10일 열리는 연례 총회에서 ‘제국’에 관한 특집 패널을 만들어 토론을 벌일 예정이다.》

조공외교의 실체-북학파 시대인식 주목

최강대국 미국과의 미래 해답찾기 나서

아울러 국제정치학계에서는 ‘한국이 제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정립할 것인가’의 해답을 역사 속에서 찾는 시도들을 활발히 벌이고 있다. 전(前)근대 시기 중국이라는 제국을 조선은 어떻게 인식하고 대응했는지를 통해 현재 한국의 전략적 시사점을 찾고자 하는 것이다.

정용화 연세대 연구교수(외교사)는 ‘19세기 동아시아 조공(朝貢)체제의 변동과 조선’(가제)이라는 논문의 마무리 작업에 들어갔다. 전근대 중화(中華)질서에서 동아시아의 독특한 외교체제였던 조공(주변 국가들이 정기적으로 중국에 공물을 보내는 일)체제의 변천과 붕괴를 14세기 고려 말부터 19세기 조선말까지 짚어내는 작업이다.

일본 국제정치학계는 10여년 전부터 일본을 중심으로 조공체제를 재해석하고 있다. 즉 중국과 일본의 조공체제는 경제적 관계가 주였고 양국간 상하 지배질서는 형식적인 것에 불과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정 교수는 조선이나 베트남처럼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국가들은 조공체제를 통한 교역의 이익이 거의 없었을 뿐 아니라 지정학적 위치상 정치·안보적 관계가 훨씬 더 중요했다고 본다. 조선 왕조는 정권안보 차원에서 조공체제를 이용한 측면이 있다는 것.

정 교수는 “제국인 중국과 조선의 조공체제 성립과 붕괴과정, 그리고 그 체제에서 조선의 생존전략이 무엇이었는지를 파악한다면 현재 한국이 미국과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떻게 전략적으로 대응해야 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중국에 대한 조선 지식인들의 인식과 이해의 변화에 대한 연구도 진행 중이다.

하영선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를 비롯한 국제정치학자 중심의 ‘외교사연구모임’은 올해부터 18세기 조선 ‘북학파’ 지식인들의 글을 강독하고 있다.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熱河日記)를 지난 넉 달 동안 읽었고, 이달부터는 담헌 홍대용의 연행(燕行) 기록인 ‘담헌연기(湛軒燕記)’를 강독한다.

이 모임이 18세기에 주목한 이유는 중국의 명(明)·청(淸)교체기인 이 시기에 중국에 대한 조선 지식인들의 인식에 중대한 변화가 생기기 때문이다. 호란(胡亂) 이후 조선 성리학자들은 청을 인정하지 않고 ‘소중화(小中華)’를 자처했다. 그러나 청을 드나들면서 발전된 문물을 보고 서구 천문지리를 익힌 북학파는 청이 중화문명의 계승자임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세상의 중심이 중국이 아니라는 점도 깨닫게 된다. 즉 과거와는 다른 인식과 이해, 그리고 대응방법을 모색하던 시기가 바로 18세기였다는 것이다.

지정학적 조건상 한국이 감당해야 할 국제정치적 상황이 과거나 현재나 유사하다는 점에서, 역사에 천착하는 국제정치학계의 연구는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민동용기자 mind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