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오명철]‘백남준 퍼포먼스’

  • 입력 2004년 10월 4일 18시 56분


코멘트
세계적 평가를 받고 있는 한국 예술인은 누구일까. 지휘자 정명훈, 소프라노 조수미, 발레리나 강수진,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등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한국 출신의 가장 위대한 예술가로 단연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72)을 꼽는다. 다른 이들이 기존 예술분야에서 세계적인 성취를 이룬 데 비해 백남준은 예술의 한 장르를 ‘창안’해 낸 시조(始祖)이기 때문이다.

▷백남준은 비디오 아트에 앞서 ‘퍼포먼스(Performance)’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해프닝 이벤트 등으로 불리는 퍼포먼스는 전통적인 장르 개념으로는 충족할 수 없는 표현 욕구를 신체를 이용해 표현하는 예술행위다. 현대예술에서는 1952년 존 케이지가 4분33초 동안 아무 연주도 하지 않은 채 끝낸 ‘4분33초’를 선구적 사례로 꼽는다. 이어 1960년대에 나타난 ‘플럭서스(Fluxus)’를 통해 유행처럼 번졌다.

▷백남준은 1959년 말 독일 뒤셀도르프 ‘갤러리 22’에서 과격하게 피아노를 파괴하는 것으로 퍼포먼스에 뛰어든다. 관람객의 넥타이와 티셔츠를 잘라 내거나 구두에 물을 담아 마시고, 갓 잡은 황소 머리를 화랑 정문에 걸어 놓아 충격을 던졌다. 미국 뉴욕에서는 실오라기 하나 안 걸친 여류 첼리스트 샬럿 무어만을 ‘연주’하는 파격 퍼포먼스로 충격을 준다. 1998년 백악관에서 백남준이 빌 클린턴 대통령과 악수를 하면서 그의 바지가 순간적으로 흘러내려 성기가 노출되자 미 언론들은 “클린턴 대통령의 ‘지퍼 게이트(Zipper Gate)’를 풍자한 퍼포먼스”라고 해석하기도 했다.

▷퍼포먼스는 동양의 작은 나라에서 온 예술가 백남준을 서구에 알리는 ‘충격 요법’이었을 것이다. 몇 해 전 만난 그는 “아무리 노력해도 미 언론이 관심을 갖지 않아 로봇을 만들어 싸돌아다니게 했더니 뉴욕 타임스에 났어. 그 뒤 몇 번 재미를 봤는데 또 시들해지더군. 그래서 로봇을 차로 깔아뭉갰더니 대서특필되더라고…” 하며 웃었다. 뇌중풍으로 9년째 휠체어 신세를 지고 있는 백남준이 6일 뉴욕에서 모처럼 퍼포먼스를 선보인다고 한다. “예술은 사기”라고 외쳤던 그가 어떤 ‘고급 사기’로 세상을 놀라게 할지 기대된다.

오명철 논설위원 oscar@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