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문홍/여자 예비군

  • 입력 2004년 3월 23일 19시 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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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여자들이 가장 못 견뎌 하는 게 ‘남자들끼리 군대시절 얘기로 수다를 떠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한 술 더 떠 남자들이 ‘군대에서 축구 경기 했던 얘기’를 시작하면 옆에 있는 여자들이 모두 도망가 버린다고 했던가? 대한민국 남자들에게 ‘군 복무’라는 공통의 추억이 갖는 막강한 흡인력을 보여주는 우스갯소리다. 남자들은 초면인 사이라도 군번을 맞춰 보고 군대시절 경험을 비교하면서 금방 친해지곤 한다.

▷예비군 훈련장의 추억도 군 복무 때의 그것에 못지않다. 전역 후 얼마 동안 동원예비군 훈련을 받는다며 며칠씩 직장을 빼먹을 때는 그래도 자신이 ‘젊다’는 생각에 세상이 만만해 보인다. 평소에는 번듯하던 사람이 속칭 ‘개구리복(예비군복)’만 입으면 어딘지 나사가 빠진 듯 자세가 흐트러졌던 것도 그런 젊음의 왜곡된 표출이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 해인가부터 예비군훈련 통지서가 날아오지 않게 되면 남자들은 나이 먹는 자신의 모습을 실감하기 시작한다. ‘동생뻘인 현역병의 지시에 콧방귀도 뀌지 않던’ 예비군 훈련장의 기억은 점점 흐릿해지고, 대신 그 자리에 식솔을 거느린 가장의 책임감이 무겁게 내려앉는다.

▷남자들의 ‘전유물’이 또 하나 사라지는 것 같다. 육군 예하의 정식 조직으로는 처음으로 ‘여자 예비군소대’가 창설됐대서 하는 말이다. 강원 춘천시 남산면에 사는 여성 65명이 그 주인공들이다. 30대에서 6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에, 가정주부에서 상인 농민까지 직업도 각양각색인 여성들이 무거운 철모에 예비군복을 입고 훈련에 땀 흘릴 장면을 상상하면 빙그레 미소를 짓게 된다. 개중엔 아들을 군대에 보낸 어머니도 있다니 그 뜨거운 모정(母情)이 새삼스럽다.

▷이스라엘 여성들은 남자들과 똑같이 13세부터 군사훈련을 받기 시작해 2년간 의무 복무를 거친 뒤 50세까지 예비역에 편입된다고 한다. 과거 현모양처(賢母良妻)를 미덕으로 치던 우리나라에도 군대에 자원입대하는 여성이 날로 늘어가는 추세다. 여자 예비군이라고 해서 하등 이상하게 볼 필요가 없는 이유다. 그나저나, 이러다 혹시 여자들끼리 군대 시절과 예비군훈련 얘기로 남자들을 소외시키는 날이 오지는 않을까?

송문홍 논설위원 songm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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