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鬪 病 문 학” 고통이란 이름의 희망…투병소재 작품늘어

  • 입력 2004년 3월 22일 20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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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다 칼로의 작품 ‘작은 사슴’(1946). 평생 동안 교통사고 후유증과 싸워온 칼로는 자신의 고통을 작품으로 승화시키는데 온 힘을 바쳤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프리다 칼로의 작품 ‘작은 사슴’(1946). 평생 동안 교통사고 후유증과 싸워온 칼로는 자신의 고통을 작품으로 승화시키는데 온 힘을 바쳤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질병과 싸우는 이들의 의지와 그 가족들의 연민을 녹여낸 문학작품들이 요즘 부쩍 늘고 있다. ‘투병 문학’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들 작품은 문단의 좋은 평가와 반응도 얻고 있다. 출판사 ‘작가’가 설문조사한 ‘지난 해 좋은 시’의 2위에 오른 송수권 시인의 시 ‘아내의 맨발’은 백혈병에 걸린 아내 이야기를 다뤘다. 올해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김훈씨의 ‘화장’은 뇌종양으로 죽어가는 아내를 둔 중년 남성의 눈으로 생사(生死)에 대한 성찰을 담았다. 시가 시인의 투병 경험 등 개인적 체취를 짙게 드러내는데 비해 소설은 병(病)을 통해 우리 사회가 앓고 있는 여러 문제들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는 점에서 구별된다.》

●시

강문숙씨가 1월에 펴낸 시집 ‘탁자 위의 사막’(문학세계사)은 투병중인 시인 자신과 백혈병과 싸우고 있는 남동생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강씨는 완쾌를 위해 의지를 불태우면서도 오랜 질병을 ‘친구처럼’ 여기려는 모습도 보인다.

‘야곱의 환도 뼈가 부러지도록 한판 해보고 싶다/어머니는 그것을 기도라고 하시지만, 나는/눈 확! 까뒤집고 어디 한번 붙어보고 싶다.’ (‘백일기도’)

‘인터넷 공짜 응모 사이트 회원 가입 때나 취미 항목에 ‘병과 놀다’라고 써넣을까, 생각중이다.’ (‘병과 놀다’)

조용미씨의 시집 ‘삼베옷을 입은 자화상’(문학과지성사)에도 병과 싸우는 시인이 느낀 몸과 신(神)의 의미가 담겨 있다.

‘육체를 지닌 인간의 비애를 신은 알기나 할까/삶이 이다지 生生한데/통증이 이리도 生生 한데/이걸 모르는/신은 가여운 존재’ (‘푸른 창문들’)

송수권씨의 ‘아내의 맨발’은 신혼 무렵 발을 간질이면 웃음을 참지 못하던 아내의 이야기다. 그 아내는 모진 고생 끝에 병으로 눕게 되자 발을 간질여도 아무런 감촉을 느끼지 못한다.

송씨 부인은 지난해 말 수술을 받은 후 퇴원했으며, 한 구두회사는 ‘아내의 맨발’을 위해 구두를 맞춰 주었다.

●소설

구효서씨가 월간 ‘현대문학’ 2월호에 발표한 ‘시계가 걸렸던 자리’는 암에 걸려 시한부 삶을 사는 직장인을 통해 우리가 상실한 ‘농촌적 시간관(觀)’을 되돌려준다. 주인공은 “아침 햇살이 안방 문턱에 떨어져 내릴 때 너가 태어났다”는 어머니의 말이 정확히 몇 시 몇 분을 가리키는 것인지 알아보기 위해 슬픔에 찬 귀향길에 오른다.

서하진씨가 지난해 계간 ‘문학동네’ 겨울호에 발표한 ‘알 수 없는 날들’은 이상에 대한 상실감을 질병에 비유했다. 한때 배다른 오빠에게 매혹됐지만 그가 숨지자 그 존재를 잊어버린 여동생이 병명도 모르는 병을 앓는다. 계명대 손정수 교수(문예창작과)는 “배다른 오빠는 이상적 가치 같은 것”이라며 “그게 없어도 불편하진 않지만 가끔 떠올라서 자기를 아프게 하는, 정신적인 그 무엇”이라고 봤다.

지난해 나온 신경숙씨의 창작집 ‘종소리’의 타이틀 작품에는 희귀병을 앓는 중년의 직장인이 나온다. 그의 병인 ‘크론키드카나다’는 음식을 먹지 못하게 하는 거식증 같은 것이지만 음식을 삼켜야만 치유되는 기묘한 병이다.

작가들은 환자가 병든 육신을 치유하는 과정과 이를 돕는 가족들의 따뜻한 이야기를 통해 급박한 산업화와 세계화가 남긴 진통과 상실감을 위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권기태기자 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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