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디의 콤플렉스'…성도착 판사맞서 약혼녀 구하기

  • 입력 2003년 11월 28일 17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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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의 콤플렉스(Le complexe de Di)/다이 시지에 지음 갈리마르 출판사

2003년 공쿠르 문학상의 조급한 발표에도 불구하고 예정대로 10월 말 발표된 페미나 문학상은 소설부문 수상작으로 중국계 작가 다이 시지에(49)의 ‘디의 콤플렉스’를 선택했다.

공쿠르 문학상 못지않은 전통과 권위를 갖는 페미나 문학상이 중국계 작가에게 돌아갔다는 사실은 최근 프랑스에 일고 있는 동양문화에 대한 높은 관심을 고려한다면 그리 놀라운 ‘사건’은 아닌 것 같다.

다이 시지에는 1984년 프랑스에 온 후 영화감독 겸 소설가로 활동하고 있는 중국계 작가. 그의 첫 소설인 ‘발자크와 중국인 소녀 재단사’는 문화혁명기에 중국의 산골 마을에서 재교육을 받아야 했던 두 부르주아 청년과 마을 소녀의 사랑 및 우정을 소재로 한 서정적 작품이었다. 두 번째 소설인 ‘디의 콤플렉스’는 프랑스에서 정신분석학을 공부한 주인공 ‘무오’가 구금된 약혼녀를 구하기 위해 성도착증 환자인 ‘디’ 판사를 상대로 벌이는 ‘돈키호테 식 모험’을 해학성 넘치게 그린 작품이다.

필자는 두 작품 속에서 작가가 시도하는 ‘동서양의 만남’에 주목하고 싶다. ‘변모하는 중국 사회의 초상화’를 그리면서도 작가는 자전적 체험을 바탕으로 쉴 새 없이 ‘동서양을 잇는 가교(架橋)’를 놓고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 소설에서 그 역할을 발자크로 대표되는 프랑스 문학이 했다면 두 번째 소설에서는 프로이트와 라캉의 정신분석학이 맡고 있다. 따라서 그가 프랑스어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모습은 가오싱젠(2000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보다는 프랑수아 쳉(98년 페미나 문학상 수상자로 2002년 아카데미 학술원 회원에 선출)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금년은 프랑스 문화부가 정한 ‘중국의 해’다. 프랑스 전역에서 다양한 중국문화 행사가 벌어지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서점마다 중국 관련 서적들이 한 코너를 장식하고 있다. 중국은 동양문화의 대변자를 자처해 왔고 이제는 재불 중국작가들을 통해 ‘동서양 문화의 새로운 접목’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거대한 한류(漢流)의 흐름 속에서 한국문화의 설 자리가 있을까. 중국이나 일본과는 다르게 우리 고유의 자리 매김을 하고 ‘동서양의 새로운 만남’이 이루어지는 역사적 현장에 함께 할 수 있을까. 그곳에 이르는 길은 파리의 어느 서점에서 우연히 본 ‘마리 이야기’(2002년 앙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 대상을 받은 이성강 감독의 동명 만화영화를 원작으로 한 그림동화집, 밀란 출판사)의 신세처럼 중국 도서들에 파묻혀 순탄치 않은 길이 되겠지만 분명 새 천년을 맞아 한국문화가 꿋꿋이 헤쳐나가야 할 여정임에 틀림없다.

임준서 프랑스 루앙대 객원교수 joonseo@worldonline.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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