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은 종족번식 위한 진화의 결과" 최재천 교수등 주장

  • 입력 2003년 10월 21일 18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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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형벌제도를 소재로 그림을 그린 풍속화가 김윤보의 ‘형정도첩’ 일부. 체벌 받는 남자를 그렸다. -사진제공 서울대학교출판부
조선시대 형벌제도를 소재로 그림을 그린 풍속화가 김윤보의 ‘형정도첩’ 일부. 체벌 받는 남자를 그렸다. -사진제공 서울대학교출판부
국내 최초의 진화심리학 사례 연구서인 ‘살인의 진화심리학’ 출간을 계기로 학계에 진화심리학의 타당성을 둘러싼 논쟁이 일고 있다. ‘살인…’의 저자는 최재천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와 한영우 한림대 한림과학원 특임교수(한국사) 등 6명.

최 교수 등은 이 책에서 조선후기 살인사건을 진화심리학의 틀로 분석한 뒤 “유교문화권에서도 살인이 종족번식을 위한 진화의 결과였다는 종(種) 보편적인 특성이 발견됐다”고 주장했다.

최 교수팀이 서울대 규장각 소장본인 ‘규장각한국본종합목록(奎章閣韓國本綜合目錄)’에 기록된 조선후기의 살인사건 463건을 분석한 결과 이 중 80%가 남성간의 살인인 것으로 나타났다. 진화심리학자들은 이를 ‘양육투자이론’이란 진화이론으로 설명한다. 남성은 자식 양육에 여성보다 투자를 덜 하는 대신 여성에 대한 접근 권한을 갖기 위해 동성간에 치열하게 경쟁한다는 것.

또 배우자 살해사건 30건 가운데 23건은 남편이 아내의 외도를 의심한 경우였다. 진화심리학에서는 남성들이 아내가 낳은 아이가 자기 아이인지 확신할 수 없는 부성(paternity) 불확실성 때문에 배우자의 부정에 훨씬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해석한다. 최 교수팀은 또 가족 구성원간 살인사건 54건 가운데 39건이 유전적 연관성이 없는 인척간 살인인 점에 주목했다. 이는 유전자를 공유하는 정도가 클수록 살인율이 낮아진다는 진화심리학의 해석과 일치하는 결과란 것이다.

그러나 “진화심리학이 사회문화적 환경의 중요성을 간과했다”는 인류학자, 심리학자들의 반박이 만만치 않다. 이문웅 서울대 인류학과 교수는 “인간의 모든 행동을 종족번식을 위한 진화로만 해석한다면 최근의 출생률 저하는 종 번식을 포기한 돌연변이의 결과인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이 교수는 “부계친족사회였던 조선과 다른 모계사회에서의 살인 유형은 달리 나타난다”며 “다양한 사회 문화적 현상은 생물학적 차원을 넘어서는 것”이라고 밝혔다. 김현택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도 “인간이 동물의 본능적 공격성을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인간 행동을 야기하는 심리를 이해하려면 사회 환경적인 요인을 함께 보아야 한다”며 생물학적 결정론을 반박했다.

진화심리학적 해석의 타당성을 인정하는 사회과학자들도 이 이론의 정합성을 검증할 방법이 없어 ‘결국 진화론적 설명을 믿는가, 아닌가’란 신념의 문제로 귀착되는 것을 진화심리학의 한계로 지적했다.

▽진화심리학(Evolutionary Psychology)=90년대 이후 등장한 진화생물학과 인지심리학이 결합된 학문. 인간의 마음이란 인류가 생존해오며 직면했던 적응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연의 선택과정을 통해 진화된 심리기제라고 풀이한다.

이진영기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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