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칼럼]목수정/아름답게 살 순 없을까

  • 입력 2003년 9월 22일 18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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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수정
‘결국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하고 말거야.’

한 여성 신학자가 썼다는 책의 제목을 우연히 보고 가슴이 뛰었다. 석 달 전, 4년 남짓한 프랑스 생활을 마치고 한국 땅을 다시 밟으며 새삼스럽게 우리 사회에서 무엇인가가 사라져 버렸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그것은 ‘아름다움’이라는 인류 보편의 가치였다.

외환위기를 겪은 뒤 나라 전체가 극단적으로 개편된 듯했다. 우리 시대에 여신처럼 군림하는 ‘보아’와 ‘이효리’는 그들이 벌어들이는 수백억원대의 가치로 재단돼 신문 지상에 연일 오르내린다. ‘대박’이 ‘유일 선(善)’이 되어버린 듯하다.

경제 논리가 사회 전체를 지배하는 한 일등부터 꼴등까지 아무도 행복할 수 없다.

아름다움은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있다. 프랑스 드골 정권 때 문화부 장관을 지낸 앙드레 말로는 10년의 재임기간 중 문화정치의 근본이념을 닦는 데 주력했다. 그는 경제력 군사력 등의 가치는 국민을 하나로 모으는 근원적 가치가 될 수 없고, 종교의 영향력이 사라진 현대 프랑스에서 사람들의 정신을 채워 줄 수 있는 것은 문화라고 믿었다.

문화는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와 다양성을 그 본질로 한다. 1980년대 미테랑 정권이 서커스, 마리오네트(실로 매달아 조작하는 인형극), 거리연극 등 소위 마이너 예술에 대해서도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은 것도 다양성 속에서만 문화가 왕성한 생명력을 드러낼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도 문화입국에 대한 소리가 높다. 그러나 그 목소리는 대체로 경제논리 속의 문화적 전략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우리는 단아한 맵시의 처마 밑에 오색의 정교한 단청을 그려놓고 그 밑엔 풍경을 매달아 놓을 줄 알았던 수준 높은 미의식을 조상에게서 물려받았다.

그런 우리가 네모반듯한 60평짜리 아파트를 후손에게 물려주는 것으로 자위할 수는 없다. 저마다 색다른 아름다움을 지닌 집을 짓는다면 모두의 영혼에 밝은 등불이 하나씩 켜질 것이다. 더디 가더라도 이젠 아름다움이라는 가치에 초점을 맞춰 보자.

목수정 국립발레단 기획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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