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연극 '기차'…무언극으로 실어나르는 희망

입력 2003-06-17 17:23수정 2009-10-10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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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짓과 표정으로 언어보다 더 많은 의미를 전달해주는 극단 초인의 비 언어극 ‘기차’. 사진제공 극단 초인
첫차부터 막차까지, 기차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을 싣고 와선 이름 없는 사람들의 희망을 안고 떠난다. 기차역은 그저 막막히 뻗은 선로밖에 가진 것이 없지만 그것은 평범한 현재적 공간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고 미래를 현재에 머금고 있는 영원한 미완의 공간이다. 그곳에는 언제나 ‘작은 희망의 문’이 열려 있기 때문이다.

이 기차역에 사람들이 모였다. 자신들을 또 다른 세계로 실어다 줄 기차를 기다리는 마술사 부부(현대철 송경순 분), 힘든 삶이지만 장난기를 잃지 않는 앵벌이 남매(이상희 이혜원), 이 남매를 채찍으로 지배하는 포주(정의순), 그리고 역을 지키는 역무원(임해열)과 스쳐 가는 사람들(성동한 외).

노랑 치마, 파란 잠바, 새빨간 꽃바지 그리고 노랑 머리, 녹색 머리, 보라색 머리…. 울긋불긋한 광대 복장에 과장된 모습으로 분장한 배우들은 이렇게 별 볼 일 없는 사람들의 작은 이야기를 펼친다.

이들은 언어 대신 비언어를 택했다. 언어는 인간의 생각을 정리하고 전달하고 저장하는 유용한 도구지만 또 한편으로 인간의 생각을 이데올로기로 오염된 개념의 틀로 규정짓는 무서운 감옥이기 때문이다.

연극 ‘기차’는 ‘극단 초인’의 첫 작품이다. 이 극단은 ‘마임이나 무용, 아크로바틱(곡예) 등 다양한 장르를 결합한 새로운 무대언어를 만들어 가겠다’는 목표 아래 창단됐다.

이번 무대에서 배우들은 광대들의 무언극이라는 형식으로 언어가 해낼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표정과 몸짓을 통해 전해 준다. 곡마단의 음악을 연상시키는 조선형의 음악은 등장인물의 갈등과 애환을 넉넉한 감성으로 전달해 준다. 미완의 열린 공간인 기차역에서 펼쳐지는 이들의 무언극은 언어 중심의 연극이 펼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확장된 상상의 공간을 관객에게 열어 준다.

이야기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기차표를 잃어버린 마술사 부부는 앵벌이 남매와 경쟁하며 역 앞에서 기차표를 살 돈을 구걸하다가 포주에게 고통 받는 앵벌이 남매를 구출해준다. 나아가 이들은 부상당한 포주에게도 사랑을 베푼 뒤 기차를 타고 떠난다.

때로는 섬세한 감정의 전달이 아쉬운 부분도 있다. 하지만 한국적 사회성을 배제한 채 보편성에 초점을 둔 이 작품이 앵콜 공연을 계속하며 사랑받는 이유는 분명하다. ‘내 생애 가장 따뜻한 연극’이라는, 어찌 보면 정말로 유치한 부제를 단 이 연극이 정말로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 준다는 것이다.

박정의 연출. 22일까지. 평일 오후 7시반, 토 일 공휴일 오후 4시반 7시반(월 쉼). 축제소극장. 02-744-6411

김형찬기자·철학박사 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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