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위원장 정양모 박사 "문화재는 새로 만들수 없죠"

  • 입력 2003년 5월 15일 18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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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 파편을 꼼꼼히 들여다보고 있는 정양모 문화재위원회 위원장. 평생을 문화재와 함께한 그는 특히 도자사 분야에서 학계가 공인하는 최고 권위자로 꼽힌다. -김미옥기자
도자기 파편을 꼼꼼히 들여다보고 있는 정양모 문화재위원회 위원장. 평생을 문화재와 함께한 그는 특히 도자사 분야에서 학계가 공인하는 최고 권위자로 꼽힌다. -김미옥기자
“현재 문화재위원회는 심의기구일 뿐이지요. 물론 문화재청에서 보내오는 안건을 심의하는 것만으로도 일이 벅찹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문화재위원회가 독자적인 안건도 건의할 수 있는 기구로 발전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최근 문화재위원회 신임 위원장으로 선출된 정양모 경기대 석좌교수(69)를 15일 서울 정동 사무실(한국미술발전연구소)에서 만났다. 문화재위원회는 문화재의 보존 관리 및 지정, 조사 활동을 심의하는 기구. 8개 분과 86명의 문화재와 학계 전문가로 지난달 26일 새 위원회가 구성됐다(임기 2년). 85년부터 문화재위원을 맡아온 정 신임 위원장은 각 분과 위원들의 의견을 조율하고 심의에 반영하는 일을 맡는다.

정 위원장은 무엇보다 문화재위원회의 역할 활성화를 강조했다. 그는 “현재 문화재위원은 모두 위촉직이고 상임 위원이 없기 때문에 문화재 보호와 관련 정책에 대해 적극적인 발의를 하기는 어렵다”며 “위원회에 상임 관료를 두는 등의 방안을 마련해 문화재위원회와 문화재청이 유기적으로 협력하는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하루에도 셀 수 없이 많은 공사가 진행되는 바람에 새로 발견된 매장 문화재들이 자칫 소홀하게 다뤄지는 경우도 많다”며 “임기 중 매장 문화재의 철저한 조사 활동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정 위원장은 1962년 당시 중앙박물관 미술과 학예관보로 박물관에 발을 들여놓은 뒤 99년 국립중앙박물관장으로 정년퇴임했다. 평생을 문화재와 함께 해온 만큼 정부의 문화재 정책에 관해서도 할 말이 많다.

“문화재청이 차관청으로 승격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한 발 더 나아가 장관이 관장하는 문화재부를 만들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문화재 보호를 위해서 정부가 할 일이 많습니다.”

지방의 사적과 문화재는 인력과 자금 부족으로 관리가 소홀해지면서 훼손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제대로 된 문화재 보호와 관리를 위해서는 힘 있는 기구가 요구된다는 것. 그는 세부적으로는 문화재청과 박물관 등에 보존 처리 시설과 인원을 확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문화재는 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자면 문화재를 제대로 관리하고 보존 처리할 수 있는 시설이 필요합니다. 박물관은 문화재로 볼 때 병원이나 의원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반면 문화재청은 보건복지부나 연구소의 역할을 해야지요. 문화재 보호 정책을 수립하고 그 보존에 실질적으로 필요한 연구 활동과 기술 지원을 하는 것이 문화재청이 해야 할 일입니다.”

그는 “문화재 정책은 다른 분야와는 달리 급진적이고 개혁적으로 추진해서는 안된다”고 정부에 당부했다. 문화재만큼 경륜과 실무 경험이 필요한 분야가 없는 만큼 학계 원로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반영해야 한다는 것.

전임 ‘박물관 맨’으로 그는 2005년 문을 여는 용산박물관에 관한 기대도 빼놓지 않았다. 정 위원장은 “박물관은 전시만 하는 기구가 아니다”라며 “가능하면 전시관 외에 넉넉한 공간에서 교육, 연구 활동을 할 수 있는 박물관을 마련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 위원장은 한국 도자사 연구의 최고 권위자로 손꼽힌다. 그럼에도 연구실에는 ‘현대 작품’ 한 점과 연구를 위한 파편을 제외하곤 도자기는 눈에 띄지 않았다. 책상에 덩그러니 놓인 현대 도자기도 지인이 선물한 것으로 문방구를 담아 놓는 도구로 사용하고 있었다. 선친인 위당 정인보(爲堂 鄭寅普·1893∼?) 선생이 쓴 한문 편지를 표구한 액자가 그나마 유일하게 ‘고풍스러워’ 보이는 물건. 도자기, 넓게는 문화재를 바라보는 그의 태도가 여기에서 드러난다.

“도자기 연구하는 사람은 도자기를 가지면 안 됩니다. 일단 소유하면 편견이 생기고 사심이 생겨요. 문화재를 공부하는 일은 명리와는 관계없는 일입니다. 평생 도자사와 회화를 공부했지만 누가 그림이라도 감정해달라고 물어오면 아예 ‘모른다’고 대답하고 맙니다.”

요즘 정 위원장은 문화재위원회 업무와 대학원 강의 외에도 9월 개막하는 도자기 비엔날레(경기 광주시 조선관요박물관)의 기획을 의뢰받아 바쁘게 보내고 있다. 그는 “정년퇴임하면서 후대에 자료가 될 만한 책을 꼭 한 권 쓰려고 마음먹었는데 일이 더 많아져 도무지 짬이 나지 않는다”며 웃었다.

주성원기자 s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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