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관 발언에 "언론은 독과점 규제 대상 아니다" 논란

  • 입력 2003년 4월 16일 18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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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언론의 과다한 시장점유율을 조정하기 위해 정부가 신문시장에 개입하겠다’고 밝힌 이창동(李滄東) 문화관광부 장관의 국회 발언에 대해 법조계와 학계에서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헌법을 생각하는 변호사 모임’ 소속 임광규(林光圭) 변호사는 “신문을 독과점 규제 대상으로 보는 것은 아주 잘못된 판단”이라며 “주권자이자 여론조성자인 독자가 신문을 구매하는데 정부가 왜 나서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임 변호사는 “신문은 ‘상품’과 ‘여론 조성’ 등 2가지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데 여론 조성에 손을 댄다는 것은 국민의 주권에 손을 대는 것과 다름없다”며 “이 장관의 발언은 법을 전혀 모르는 위험천만한 생각”이라고 꼬집었다.

이 장관의 발언이 ‘표현의 자유’를 규정한 헌법정신에 정면으로 위배된다는 비판도 나왔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사무총장을 지낸 이석연(李石淵) 변호사는 “언론기관은 헌법에 보장돼 있고 민주주의 이념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표현의 자유’를 수행하는 주체라는 점에서 이 장관의 발언은 반(反) 헌법적인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이 변호사는 이어 “언론은 정부가 간섭하지 않아도 신문의 수요자인 독자에게서 매일매일 평가받으면서 정당성을 확보하고 있다”며 “신문시장을 인위적으로 재편한다는 것은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도외시하는 정책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고려대 언론학부 임상원(林尙源) 교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가장 금기시해야 할 것은 권력자의 ‘자의성’인데, 대통령과 장관 등 권력자가 선(善)과 악(惡)을 ‘자의적’으로 판단하고 정책을 시행하는 것은 독재국가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라며 “신문시장 규제는 외국에서도 전례를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정부가 신문시장을 규제하려는 시도는 자유민주주의 사회의 언론 기능과 본질을 잘못 인식한 결과라는 비판도 나왔다.

허영(許營) 명지대 초빙석좌교수는 “공정거래위원회가 규제하는 일반 상품시장과 언론시장은 전혀 다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언론시장은 공정위의 규제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단언했다.

허 교수는 “언론 상품을 일반 상품과 똑같이 재단해 규제하려는 것은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언론이 수행하는 기능과 본질을 잘못 인식한 결과”라며 “한 나라의 장관이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한양대 법대 권형준(權亨俊) 교수는 “공정거래법은 영리회사를 규율하는 법”이라며 “언론사는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인 동시에 헌법상 언론 자유의 주체인 언론기관이기 때문에 일반 영리회사와 결코 동일하게 취급될 수 없다”고 했다.

고려대 법학과 이기수(李基秀) 교수는 “설령 공정거래법에 따른다 하더라도 시장의 독과점 여부에 대한 판단은 전적으로 공정거래위원회 소관사항이며 문화부가 이를 거론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비판했다.방송 독점에 대한 문제도 제기됐다. 임 변호사는 “신문시장은 진입, 퇴출이 원활하기 때문에 독과점이 될 수 없는 반면 오히려 정부가 장악하고 있는 공중파 방송 3사의 독과점이 더욱 심하다”고 지적했다.

이태훈기자 jeff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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