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심볼' 보기 봤는데…숨은 뜻이 아하! 그렇구나

  • 입력 2003년 4월 13일 17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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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의 상징, 평화의 상징

이라크전 반전운동은 결국 전쟁을 막지 못한 실패한 반전운동으로 끝나고 말았지만 전세계적으로 전대미문(前代未聞)의 규모로 일어나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번 반전운동에 각국에서 거의 빠짐없이 등장한 공통점 하나는 ‘평화 심볼(Peace Symbol)’의 사용이다.

평화의 상징이 처음 주목을 받은 것은 1958년 영국 ‘핵군축을 위한 캠페인(CND)’의 알더마스턴 시위에서다. 이후 60년대 전세계를 휩쓴 학생들의 반전시위에서 평화의 상징이 빈번히 사용되면서 당시 청년문화를 대표하는 이미지가 됐다.

80년대 들어와서는 반전운동외에 환경운동의 상징으로도 널리 사용됐다.

평화의 상징은 제럴드 홀텀이란 영국인이 디자인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자주 반전사상가로 유명한 영국 철학자 버트란드 러셀이 디자인했다는 설도 제기됐지만 그건 러셀이 당시 CND의 회장을 맡은 데서 빚어진 오해로 판명됐다.

이 상징은 원과 그 속에 핵(Nuclear)을 뜻하는 N과 군축(Disarmament)을 뜻하는 D의 국제 수기신호를 따서 이뤄져있다. 원을 벗겨버리면 힘없이 팔을 늘어뜨린 인간의 절망하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 나타난다. 그러나 근본주의적 기독교인들은 이것이 까마귀의 발모양을 형상화한 악마의 상징이라고 비난했다.

평화의 상징은 본래 검은 바탕에 흰색 선을 사용했다. 검은 바탕은 영원을, 흰색의 선은 평화를 의미한다. 그러나 이후의 반전시위에서는 색의 의미는 흐려지고 다양한 변화가 이뤄졌다. 오늘날에 와서는 동성애 운동단체인 레인보우의 화려한 무지개색과 어울려 ‘레인보우 평화의 기’로도 자주 사용되고 있다.


#한국의 반전디자인

서울의 반전시위에서는 유독 평화의 상징이 거의 등장하지 않았다. 작년 월드컵 대회 응원단의 붉은 티셔츠, 반미 집회의 촛불,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의 노란 풍선과 달리 눈에 띄는 반전의 상징은 없었다. 반전시위가 국내에서는 사실상 처음 있는 일이어서 경험의 부족을 드러낸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서울 종로구 관훈동 맥도날드점에서 벌인 환경운동연합의 반전시위는 즉흥적인 창의성이 돋보이는 한편의 디자인이었다. 맥도널드는 단순히 미국의 한 기업이 아니라 미국을 상징하는 기업. 따라서 반미의 의사를 표현하는데 단골로 이용돼온 소재다. 시위대는 맥도널드의 M자를 염두에 두고 ‘Mad War(미친 전쟁)’라고 쓴 휘장을 수직으로 내걸었다. 맥도널드의 M자와 전쟁(War)의 W자가 대칭을 이루며 균형을 잡아주고 있다. 그위에서 군복을 입은 부시 대통령이 차도르를 쓴 이라크 국민을 향해 총을 겨누는 모습을 장난스럽게 연출해 자연스럽게 반전 의사를 표현했다.

#각국의 반전디자인

영국 런던에서는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이나 일본 가부키(歌舞伎) 배우의 분장을 연상시키는 가면으로 전쟁의 비극을 표현했다. 스페인 리바벨로사에서는 이나라의 상징인 검은 투우가 피를 흘리는 모습으로 반전을 나타냈다. 미국 필라델피아에서는 자유의 여신상을 빗대 횃불대신 미사일을 손에 든 해골상을 등장시켰다. 프랑스 파리의 한 여성은 차도르위에 ‘이라크 전쟁 반대’라고 쓴 테이프를 붙여 침묵속에서 강렬하게 반전의사를 표시했다.

그리스 아테네 시민들은 USA의 S자를 스와스티카(卍)자로 바꿔 미국을 나치에 비유했다. 시리아의 한 여성은 9·11 테러 장면을 묘사하는 포스터에 ‘쇼는 이렇게 시작됐다(It was the way that the show started)’라고 썼다.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이 숫자 11대신 쓰이고 있다. 미국 보스턴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는 동심을 반영한 깜찍한 반전 디자인이 선보였다.

송평인기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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