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한국의 20대 어디로]1등주의가 ‘청년위기’ 부른다

  • 입력 2003년 4월 3일 18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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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위기’의 원인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우선 한국사회의 지나친 ‘1등주의’와, 다양성보다 획일주의를 강조하는 사회분위기를 근본원인으로 꼽고 있다. ‘과보호’를 받으며 자라온 20대의 의존적인 태도도 역시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전남대 심리학과 박태진(朴泰珍) 교수는 “무엇이든 점수와 서열을 매기는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가 문제”라며 “청년들에게 자립과 자율성을 길러주지 않고 과보호한 것도 주요 원인”이라고 말했다. 현재의 20대는 ‘공부 열심히 해라’는 말만 들었을 뿐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공부를 하지 못했다는 것.

중앙대 심리학과 김재휘(金宰輝) 교수는 “사람을 평가하는 잣대에도 문제가 있다”며 “대학은 일류대, 취직은 대기업이어야 한다는 편견이 뿌리박혀 있다”고 지적했다.

급속한 사회변화도 청년 위기의 한 원인이라는 지적도 있다.

연세대 심리학과 황상민(黃相旻) 교수는 “사회가 복잡다단해지면서 과거에 비해 인생에 대한 선택의 폭이 커졌다. 그러나 젊은이들은 학교나 가정에서 ‘선택과 결정을 하는 훈련’을 받지 못한 것이 문제다”고 분석했다. 그는 “대기업에 취업한다 해도 10년 이상 있을 수 있다고 자신하는 사람은 드물다”며 “결과적으로 ‘선택된 사람’들조차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이 더 심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연세대 사회학과 김호기(金皓起) 교수는 “정보화사회가 되면 사회 구조나 문화가 유목적인 성향을 띠게 된다”며 “이 경우 개인이 점점 더 자기 삶에 대한 예측을 하기 어려워 불안감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대기업에 입사해서 결혼하고 승진하는 식의 전통적 모형은 젊은이들에게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근본적인 학교 교육시스템의 변화를 대책으로 내놓고 있다. 단순한 과목 교육에서 벗어나 ‘삶에 대해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 청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고 ‘인생은 나의 것’이라는 자신감을 키워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황 교수는 “청년 실업자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공대생을 늘리기 위해 장학금을 지급하는 식의 ‘미봉책’으로는 결코 청년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며 “결국 다양성을 인정하는 사회 구조의 변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청년위기(Quarterlife Crisis)▼

2000년 미국의 저널리스트 알렉산드라 로빈스와 애비 윌너가 공저한 ‘청년 위기(Quarterlife Crisis)’에서 처음 등장한 용어로 청년기는 인생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시기라는 의미. 로빈스와 윌너에 따르면 청년 위기는 가정과 학교의 틀 속에 있던 젊은이들이 경쟁사회에 진출해 수많은 ‘결정과 선택’을 하게 되면서 느끼는 자포자기 상태와 무력감을 나타내는 현상이다.

김선우기자 sublime@donga.com

장강명기자 tesomi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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