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흐르는 한자]<551>洛 陽 紙 貴(낙양지귀)

  • 입력 2003년 3월 30일 18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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洛 陽 紙 貴(낙양지귀)

洛-낙수 락 紙-종이 지 譽-기릴 예

騰-오를 등 都-도읍 도 膾-회 회

요즘 베스트 셀러라면 몇십만 권은 보통이며 백만권을 넘는 작품도 드물지 않다. 이럴 때 작가는 富(부)와 名譽(명예)를 동시에 얻게 된다. 그러나 옛날에는 그렇지 않았다. 富는 커녕 恥辱(치욕)을 당하는 경우도 있었으며 혹 名譽를 얻는다 해도 살아 생전에 유명인이 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다른 점은 또 있다. 옛날에는 베스트 셀러가 출현하면 종이 값이 暴騰(폭등)했다. 지금처럼 종이가 흔치 않았기 때문이다. 또 인쇄술도 발달하지 않았으므로 베스트 셀러는 돌아가면서 베껴야 했다. 이런 과정에서 誤字(오자)가 생겨나게 마련이다. 그래서 몇 번 돌다 보면 엉뚱한 문장으로 둔갑하기도 한다. 물론 같은 점도 있다. 예나 지금이나 유명 인사의 推薦(추천) 또는 평가 한 마디가 책의 聲價(성가)를 좌우할 수 있다는 점이다.

左思(좌사)는 晉(진)나라 臨淄(임치) 사람이다. 어려서는 별다른 재주가 없었다. 공부는 물론 음악도 신통치 않았다. 게다가 얼굴도 못 생긴 데다 말더듬이라 부모 속을 무던히도 태웠다.

그의 아버지는 마지막으로 그에게 글공부를 시켜보았다. 붓을 들면 좀처럼 놓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과연 그는 모든 것을 팽개치고 창작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하기를 몇 년, 그의 문장력은 놀라울 정도로 향상되었다.

그에게는 한 가지 소원이 있었다. 그것은 삼국시대 魏蜀吳(위촉오)의 세 도읍지를 읊은 三都賦(삼도부)를 짓는 것이었다. 그는 자나깨나 詩想(시상)을 다듬기 위해 애썼다. 이러기를 십 년, 마침내 三都賦가 완성되었다. 하지만 아무도 알아주는 이가 없었다.

대시인 張華(장화)는 우연한 기회에 그의 글을 읽고는 무릎을 치면서 감탄했다.

‘이 작품이야말로 班張(반장)에 匹敵(필적)할 만하구나!’

班張이라면 東漢(동한) 때의 대 문장가로 兩都賦(양도부)와 漢書(한서)를 쓴 班固(반고)와 兩京賦(양경부)를 쓴 張衡(장형)을 각각 이르는 말. 張華는 左思의 문장을 두 사람의 大家(대가)에게 비겼던 것이다.

이 때부터 그의 三都賦는 일약 유명해져 귀족과 고관들이 다투어 읽기 시작했으며 지식인 문인들도 그의 글을 읽지 못한 것을 부끄럽게 여기게 될 정도였다. 도읍지 洛陽은 온통 그의 三都賦 이야기로 가득 찼으며 그 바람에 洛陽의 종이 값은 폭등하게 되었다. 이 때부터 洛陽紙貴는 인구에 膾炙(회자)되는 베스트 셀러를 뜻하게 되었다.

鄭 錫 元 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 sw478@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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