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살빼기 성공하면 다른질병도 '싹'

  • 입력 2003년 3월 30일 17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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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과 장기, 체스에서 포석(布石), 포진(布陣)은 승리를 위한 주춧돌이다. 비만과의 전쟁에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14∼16일 지중해 연안의 작은 나라 모나코에서 열린 국제비만연구학회(IASO) 심포지엄의 슬로건도 ‘비만과의 전쟁을 체스처럼’이었다. 체스에서 승리하기 위해 말(馬)을 적재적소에 쓰듯 비만과의 대결에서도 적절한 ‘전략’과 ‘무기’를 쓴다면 얼마든지 이길 수 있다는 것.

이번 심포지엄에서 세계 44개국에서 모인 비만 전문가 800여명이 가장 주목한 키워드는 각종 성인병의 원인이 되는 ‘대사증후군’이었다.

전문가들은 적절한 무기로 비만의 쳇바퀴에서 벗어나면 대사증후군과 성인병의 굴레에서도 벗어난다는 사실에 대해 공감했다.

▽‘드러난 X파일’=대사증후군은 한때 ‘X증후군’이라고 불렸다. 과학자들은 1990년대 비만과 당뇨병, 고혈압, 동맥경화증, 뇌중풍, 심장병 등이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점을 역학조사를 통해 알게 됐지만 이유를 몰라 ‘X증후군’이라고 불렸다.

이번 학회에서는 ‘X증후군’의 이름이 대사증후군, 인슐린증후군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데 딴 목소리를 내는 학자가 거의 없었다.

뱃속이 기름기로 차면 간에 혈액이 드나드는 ‘들문’(문맥)에도 지방이 쌓여 평상시에 간에너지원으로 저장돼야 할 포도당이 간에 충분히 들어가지 못한다. 또 핏속에 지방산이 늘어 포도당이 근육에 저장되는 것을 방해한다.

이자(췌장)는 넘치는 포도당을 처리하기 위해 갑자기 인슐린을 만들게 되므로 ‘불량 인슐린’을 쏟아내게 된다. 게다가 넘치는 포도당은 이자에 독성으로 작용해 정교한 인슐린 제조 시스템을 방해한다. 이 때문에 당뇨병 초기인 내당능(耐糖能)장애(IGT), 제2형 당뇨병 등으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설령 인슐린이 제대로 만들어져도 갑자기 인슐린이 쏟아져 나오면 근육세포에서 인슐린과 짝을 이루는 수용체가 부족해 인슐린이 ‘실업자’가 된다. 이들 ‘방황하는 인슐린’은 콩팥의 염분 분해 작용을 방해한다. 게다가 혈액 속에서 피를 굳게 만드는 물질이 증가하고 혈관벽이 두꺼워지면서 고혈압 등 각종 성인병이 생기는 것이다.

▽대사증후군이 의심스러운 사람들=이번 심포지엄에서 영국 버밍엄대학 하트랜드병원의 앤소니 바넷 교수는 “살을 빼면 대사증후군의 모든 증세를 개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참가자들은 동양인은 서양인보다 살이 덜 쪄도 대사증후군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데에 의견을 같이했다. 서양인은 몸무게(㎏)를 키(m)의 제곱으로 나눈 체질량지수(BMI·Body Mass Index)가 30이상이면 비만이지만 동양인은 25이상이면 해당한다는 것.

특히 BMI 지수와 상관없이 뱃속에 기름이 낀 ‘내장 비만’이어도 무조건 살빼기에 들어가야 한다. 한국인은 허리 둘레가 남성 36인치, 여성 32인치가 넘으면 일단 대사증후군을 의심해야 하며 특히 아랫배보다 배꼽과 명치 사이가 불룩하거나 뱃살이 얇으면서 불룩 튀어나온 경우 더 해롭다.

▽‘전략과 무기’=스페인 트리스 푸홀대 사비에르 포르미구에라 교수는 “비만 환자를 치료할 때 가능하면 비만 전문의와 정신과 전문의, 영양사, 운동전문가 등이 함께 참여해서 환자의 처지에 맞는 살빼기 처방을 해주는 것이 좋다”고 설명했다.

대부분의 사람은 초기 체중을 5∼10㎏만 줄여도 심장병, 뇌중풍 등 심각한 질환을 현저히 줄일 수 있다.

지금까지 살빼기의 장기적 효과와 재발에 대한 연구가 부족했지만 다각적 접근이 필요하다는데 대체로 의견을 같이 했다. 우선 비만인 사람은 식사량을 하루 500∼1000㎉ 줄여야 한다.

매일 30분 정도 걷는 등 가급적 부지런히 움직이는 것과 매주 2∼4회 땀을 흘릴 정도로 달리기, 자전거 타기, 등산 등을 병행하는 것이 운동 효과가 크다. 하루의 움직임을 점검하기 위해 만보계를 차고 점검하는 것은 아주 효과적이다.

약물은 살을 더 찌도록 할 수도, 빼도록 할 수도 있다.

호주 시드니대의 영양학과 이언 카터슨 교수는 “베타 차단제, 부신호르몬제 등 일부 약은 비만의 원인이 되므로 이 약을 복용하는 사람은 의사에게 그 약이 체중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물어보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반면 제니칼과 리덕틸 등의 약은 체중 감소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카터슨 교수는 “다른 생활요법과 함께 제니칼을 복용한 사람은 생활요법만 한 사람보다 살빼기 및 성인병 예방 효과가 두드러졌다”면서 “장기적 효과도 훨씬 뛰어났다”고 소개했다.

최근 4년 동안의 연구에서 생활습관을 바꾸면서 제니칼을 복용한 사람은 생활습관만 개선한 사람보다 제2형 당뇨병 발생이 37% 적었다. 또 두 가지를 병행한 경우 4년 뒤 53%가 체중을 5% 뺀 상태를 유지했지만 생활습관만 바꾼 경우는 37%가 5%의 감량을 유지한데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심포지엄에 참석한 대한비만학회 김영설 회장(경희대 내과 교수)은 “복부비만일 때 대사증후군이나 내당능장애의 진행을 막으면 각종 성인병과 치명적인 병을 막을 수 있다”며 조기 대응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몸무게 10kg 뺐을 때의 효과
부 문효 과
사망률총 20% 감소
당뇨병 관련 30% 감소
비만과 관련된 암 40% 감소
고혈압수축기 10㎜Hg 감소
이완기 20㎜Hg 감소
당뇨병공복 혈당 50% 감소
이상지질혈증총 콜레스테롤 10% 감소
나쁜 콜레스테롤(LDL) 15% 감소
중성지방 30% 감소
좋은 콜레스테롤(HDL) 8% 증가

모나코=이성주기자 stein3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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