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자비]<11>성경의 '외식'이 '外食'?

  • 입력 2003년 3월 28일 18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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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개역판 성경에 보면 예수님이 ‘외식’하는 사람들을 못마땅해 하셨다는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마태복음 6장 5절)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마태복음 7장 5절) 등의 구절이 그 예이다.

어느 할머니가 예수님의 ‘외식하지 말라’는 말씀에 충실하느라 일평생 밖에 있는 음식점에 나가 식사하지 않으셨다고 한다. 무릇 예수 믿는 사람이 예수님 말씀을 어길 수 없다고 생각하신 것이다.

물론 이 할머니는 외면치레의 외식(外飾)을 밖에 나가 식사하는 외식(外食)으로 오해하셨던 것이다. 새로 나온 표준새번역판은 이런 오해를 없애기 위해 ‘외식’이라는 말을 ‘위선(僞善)’이라는 말로 고쳤다.

내가 쓴 책을 보고 어느 서평자는 ‘자기 할머니가 예수님을 따르느라 평생 밖에서 식사를 하지 않고 살아오셨는데 이제 성경에서 말하는 외식이 밖에서 식사하는 외식과 다르다는 것을 말씀해 드려 그분을 실망시킬 필요가 무엇인가’라고 따졌다.

어느 면에서 맞는 말이다. 음식점 중 일부는 위생시설이 좋지 않고 음식에 화학 조미료를 너무 많이 넣어 건강에도 좋지 않고 터무니없이 비싸기까지 하니 외식을 안 한 것은 100번 잘한 것이다. 서양에서도 음식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은 ‘홈메이드’라고 하지 않는가.

그러나 이 할머니의 이야기를 조금 확대해 보자. 이 할머니가 자기의 확신 때문에 식당 앞에 가서 식사하고 나오는 사람들을 붙들고 “회개하라”고 외친다면 어떻게 될까. 심지어 식당 안에까지 들어가 식사하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외치거나 만에 하나 이 할머니가 교계 지도자가 되어 교인 몇 만명을 동원하는 군중 집회를 열고 외식하는 교인의 회개를 촉구하고 심지어 전국 요식업체를 없애는 운동을 편다면…. 혹은 어느 나라 대통령이 되어 요식업으로만 먹고사는 나라를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그 나라를 공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개인의 확신이 도가 지나치게 될 때 그것이 한 개인의 문제만일 수가 없다. 그래서 종교와 정치는 섞으면 안 된다고 하는 모양이다.

오강남 캐나다 리자이나대 종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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