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학원 이사장 퇴임 녹원스님 "山門으로 수행의 길…”

  • 입력 2002년 12월 20일 18시 23분


동국학원 이사장으로 16년간 재직하다 퇴임하는 녹원스님./강병기기자
동국학원 이사장으로 16년간 재직하다 퇴임하는 녹원스님./강병기기자
동국학원 이사장 녹원(綠園·74) 스님이 20일 이사장직을 물러나 경북 김천의 직지사로 표표히 돌아갔다. 동국대 이사를 맡은 지 32년, 이사장을 맡은 지 16년 만의 일이다.

1941년 직지사로 출가한 녹원 스님은 조계종 종회회장, 총무원장, 동국학원 이사장 등 조계종의 주요 요직을 두루 맡은 조계종단의 원로. 원만 화합형이지만 세상 인심의 조석변이 속에서 해마다 거르지 않고 직지사에서 고 박정희 대통령 내외와 그 부모의 제사를 모셔줄 정도로 신의(信義)를 지키고 있다. 산중으로 돌아가기 직전의 그를 서울 동국학원 이사장실에서 만났다.

-이사장직을 그만두게 된 감회는….

“올 때도 올 만한 일이 있어 오게 됐고 갈 때도 갈 만한 일이 있어 가게 되는 겁니다. 내년 11월까지 임기가 남았지만 그런 법도를 어기면 학교나 종단에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해서 그만두게 됐습니다. 그동안 원력(願力)을 내 여러 가지 일을 했지만 이젠 후임자에게 물려주고 산으로 돌아가야 할 때라고 생각했습니다. 후임인 정대(正大) 스님이 모든 걸 잘 알고 계시니까 부담도 없습니다.”

녹원 스님은 재직하면서 많은 불사를 일궜다. 특히 동국대 의과와 한의과를 설립하고 경북 경주 포항, 서울 강남, 경기 분당, 그리고 미국 로스앤젤레스에까지 병원을 세웠다.

-16년간 재직하는 동안 재단이 안정되고 학교살림도 크게 늘었는데 그래도 미완으로 남겨 안타까웠던 일은….

“100년에 가까운 역사에 비해 동국대가 충분한 발전을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국제화와 남북통일 시대를 맞아 경기 고양시 일산에 7만평의 부지를 마련해 서울 캠퍼스와 연계한 새 캠퍼스를 짓고 주요 학과를 이전하려고 했는데 토대는 마련했지만 완성을 보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립니다. 또 일산 불교병원도 9월 준공만 해놓고 아직 개원하지 못한 것도 아쉽습니다. 하지만 모든 일을 한사람이 다 한다는 것은 무리지요.”

-종단과 학교의 원만한 관계 정립에도 많은 노력을 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종단이나 학교나 서로 의무를 도외시하고 권리만 주장해서는 안 됩니다. 서로 독립성을 인정하고 도와주는 관계가 돼야 합니다.”

학교 관계자들은 녹원 스님이 대학에 종단의 외풍을 막아 학교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고 입을 모았다.

-화합과 원만으로 본사주지 총무원장 동국대이사장 등 종단의 요직을 지냈는데….

“1950년대 불교정화운동 이후 공부하기엔 늦은 것 같고 해서 종무쪽으로 눈을 돌리게 된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저는 한번도 선거나 경쟁을 통해 자리를 맡은 적이 없습니다. 85년 총무원장과 동국학원 이사장을 겸임할 때도 저는 전혀 생각이 없었지만 주위에서 ‘종단이 어려운데 책임질 사람이 없으니까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사람들은 ‘사판(事判·절의 행정을 주로 맡는 스님)’이란 행정만을 일삼는 승려로 생각하는데 사회구원의 이타적 비원을 실천하는 것이 사판이지요. 원래 이(理)와 사(事)는 둘이 아닙니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도 매일 불전 예경을 거른 적이 없다고 들었습니다만….

“지혜도, 능력도 부족한 제가 불사를 많이 치르다 보니 제 힘만으론 안 되는 게 많았습니다. 부족한 제가 큰 불사를 올바르게 할 수 있게 해달라고 촌음을 아껴 많이 기도했습니다. 부처님에게 기도하다보면 자신감을 되찾게 됩니다.”

-직지사 중창에도 30년간 많은 노력을 쏟으셨지요.

“제가 출가한 절이기도 하고 고려시대엔 왕사(王師)도 여러 명 배출하는 등 교종과 선종을 겸비한 으뜸 사찰이었죠. 하지만 1960년대 직지사는 거의 허물어져 가는 초라한 말사였습니다. 30대에 절 주지를 맡으면서 과거의 모습을 재현해야겠다는 원을 세웠습니다. 이제는 국제적 면모의 한국을 대표하는 사찰로 성장했습니다.”

-승단과 한국불교에 가르침을 주십시오.

“과거 방식으로는 중생을 제도하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1600여년의 역사만 자랑하고 절 속에만 있어서는 안 됩니다. 한국에 들어온 지 100∼200년밖에 안 되는 천주교 기독교가 국내에서 자리잡은 것은 다 이유가 있습니다. 제가 유치원을 세우고 병원도 여러 곳에 만든 것은 생활 속으로 불교가 들어가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깨닫는 것은 모두 한마음, 일심(一心)에서 나오는 것이지만 원력을 세워 중생교화를 하는 데는 한 법(法)도 버릴 게 없습니다. 스님도 사원에서 혼자만 공부하면 안 됩니다. 직지사를 중창할 때 내가 역점을 둔 것도 일반인들이 와서 공부하고 쉴 수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부처님의 의식은 우주적인데 스님들의 의식은 사찰에만 머물러 있다면 부처님의 사상과 배치될 뿐만 아니라 중생교화도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산중으로 돌아가시는 길에 새 대통령에게 덕담 한마디 해 주십시오.

“불상유정(不傷有情). 모든 생명을 존엄시하여 사람을 다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지도자가 되면 원융(圓融)한 가슴을 가져야 합니다. 다양한 성향의 국민을 두루 포용해 주는 대통령이 돼 주시기를 간곡히 당부합니다. 낙선한 이회창씨도 평생 꼿꼿하게 살았고 다양한 직책을 고루 거친 분입니다. 운이 아직 닿지 않아 대통령에는 오르지 못했습니다만 최선을 다했으니 여한은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람이 대통령이 돼야 만족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보람 있는 일을 하면 직책이 없이도 더 큰 만족을 누릴 수 있습니다.”

서정보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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