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무속인 연구 45년 서정범 교수 “무당도 전문직이죠”

  • 입력 2002년 12월 18일 17시 35분


최근 45년간의 무속인 탐구를 정리해 책으로 엮은 서정범 교수./원대연기자
최근 45년간의 무속인 탐구를 정리해 책으로 엮은 서정범 교수./원대연기자
“무속인, 흔히 무당(巫堂)으로 불리는 사람들의 능력도 하나의 기능으로 봐야 합니다. 능력을 얻는 과정이 특이할 뿐 일종의 ‘전문직’인 셈이지요.”

지난 45년간 3000명이 넘는 무속인을 만난 서정범 경희대 명예교수(76·국문과)의 말이다. 최근 그는 무속인에 대한 자료와 연구를 망라한 ‘한국무속인열전(전6권·우석출판사)’을 펴냈다. 5권까지는 과거에 발표한 글을 발췌해 엮었고 6권에는 최근의 연구성과가 담겨 있다. 1958년부터 자신이 만나고 들은 무속인의 생활을 수필 형식으로 써 내려간 이 책을 통해 무속인의 신비한 세계를 엿볼 수 있다.

‘열전’인 만큼 다양한 무속인이 등장한다. 21일간 금식기도를 마친 뒤 한자리에서 32인분의 불고기를 먹어치운 부부, 열한 살 나이에 작두를 탄 소녀 무당, 운명이라며 결혼을 아홉 번이나 한 할아버지 무당…. ‘세상에 이런 일이’ 유의 신기한 얘기에다 ‘무속어원연구’같은 학문적 연구 성과도 적절히 곁들였다.

“60년대까지만 해도 교수가 무당을 취재한다고 하니까 이상하게 생각했어요. 산골에 있는 무당집을 찾아가다 간첩으로 몰려 군부대에 체포된 적도 있습니다. 무당을 자꾸 만나다 보니 ‘이러다 나도 신들리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요. 취재 길에 들은 증기기관차의 기적소리를 ‘영혼의 소리’로 착각해서 동행한 학생들 앞에서 불안해한 적도 있지요.” 무속인이라고 하면 흔히 민속학의 영역으로 여겨져 왔다. 서 교수의 전공은 언어학, 그 중에서도 고대 언어학이다. 서 교수는 “사실 처음엔 무속인의 생활이 아니라 말에 관심이 있었다”고 말했다. 무속인이 신이 내린 상태에서 하는 말들이 원시 시대의 언어일 것으로 여겼다는 것.

시작한 계기와 방향은 달라졌지만 곧 무속인의 생활에 그의 호기심이 쏠렸다. 요즘도 1주일에 1, 2명씩의 무속인을 만나 취재하면서 무속인의 꿈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무당에겐 왜 신이 내리는 것일까. 그들은 어떻게 사람의 과거와 미래를 맞히는 것일까. 서 교수는 “처음에는 무당이라면 모두 사기꾼인 줄 알았는데 만나서 대화를 나누다 보니 스스로 무당이 되고 싶어했던 사람은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신이 내리는 원인을 ‘애정 결핍과 보호 본능’에서 찾는다.

서 교수는 “무속인이 되는 이유는 유전적 요소(종교적 기질)가 45% 정도, 후천적인 요소(결손가정 또는 계부 계모 슬하 등)가 55% 정도 차지한다”고 말했다. 즉 부모처럼 자신을 지켜줄 ‘장치’가 없을 때 외부로부터 ‘예지능력’과 ‘치유능력’을 찾게 된다는 것. 그는 “무속인의 능력은 그들이 남다른 ‘기(氣·에너지)’를 얻는 데서 나오는 것”이라며 “이런 에너지는 위험에 노출된 원시 시대에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었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무속인을 기능인이라고 하는 것도 그들이 사람이라면 본능적으로 필요로 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능력’에서 차이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서 교수는 “초과학적 현상이라고는 해도 결국 인간의 일이므로 개인차가 있게 마련”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경험으로 볼 때 다른 사람의 ‘정보’를 제대로 읽을 줄 아는 무속인은 전체의 60% 정도”라고 말했다.

주성원기자 s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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