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키워요][건강]‘산후 우울증’ 아빠들도 겪는답니다

  • 입력 2002년 9월 10일 17시 19분


“집에 들어가는 것이 두렵다.”

사진작가 한모씨(33)는 분만실까지 따라 들어가 아내의 출산을 지켜보고 딸(3개월)의 천기저귀를 빨아줄 정도로 다정다감하다. 그러나 최근들어 괜히 짜증이 나고 육아가 스트레스로 느껴진다고 토로한다.

남편이 출산 및 육아에 적극 참여하면서 산후 우울증과 육아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해외 연구에 따르면 출산 후 3개월 이내에 10∼15%의 산모들이 산후우울증을 겪는 것으로 나타난다. 신생아 아빠들 중에도 신경이 예민해져서 정확한 이유없이 짜증을 내거나 눈물을 흘리는 경우가 없지 않다.

육아포털사이트 제로투세븐닷컴(www.0to7.co.kr)이 지난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신생아자녀를 둔 여자의 80.4%, 남자의 7.1%가 ‘우울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산후우울증까지는 아니더라도 출산이 아빠에게도 스트레스가 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통계다. 이 사이트를 운영하는 김정선 팀장은 “회원 40만명 중 40%가 남자”라며 “아빠들이 출산 및 육아에 적극 참여하면서 커뮤니티 게시판에 고민이나 경험담을 털어놓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우리아이(www.urii.com)에서 전문가 상담을 하고 있는 산부인과 전문의 송유봉씨(박금자산부인과)는 “아이의 탄생은 부부의 역할 변화를 유도해 엄마뿐만 아니라 아빠에게도 커다란 스트레스로 작용한다”고 말한다.

아빠들이 겪는 산후우울증의 원인으로 지금까지는 급격한 환경변화와 정신적 육체적 부담이 꼽혔지만 최근에는 산모들처럼 호르몬의 변화가 이유일 수 있다는 연구결과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태교 및 육아교실에 참가한 캐나다 남성들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과 부신피질호르몬인 코티졸이 줄어들고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런던 골드크레스트 클리닉의 말콤 캐루더스 박사는 “에스트로겐이 여성과 마찬가지로 남성을 순화시키고 좀 더 모성적으로 만든다”고 설명하면서 “수유 때 나오는 호르몬이 배란을 막아주듯이 남성에게도 호르몬의 변화는 성욕을 억눌러 강력한 피임 메커니즘으로 작용하고 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우울증 자가진단 테스트’를 메인 화면에 마련해 놓고 있는 아이맘(www.i-mom.co.kr)의 보령모자생활과학연구소측은 “산후에 아빠가 우울한 기분을 느낀다면 엄마들처럼 이 방법으로 자신의 상태를 체크해 볼 수 있다”고 권한다.

산후우울증은 아기의 언어발달과 인지발달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준다는데 심각성이 있다. 의정부 성모병원 소아과 김영훈 교수는 “우울증에 빠진 어머니는 아기의 인지발달에 관심이 적을 뿐만 아니라 단조롭고 낮은 목소리를 내게 돼 아기가 집중력을 키우는 데 적합하지 않고 언어발달에도 동기를 부여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엄마든 아빠든 육아 스트레스가 산후우울증의 가장 큰 원인이므로 이를 해소할 협력자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김진경기자 kjk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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