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필 내한공연]마주어, '거인'으로 마감한 영웅적 연주

  • 입력 2002년 7월 3일 18시 39분


사진 : 이훈구기자
사진 : 이훈구기자
임기 막바지에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내한한 지휘자 쿠르트 마주어는 1일 프로그램을 베토벤 교향곡 3번 ‘영웅’으로, 2일 프로그램을 말러 교향곡 1번 ‘거인’으로 마감했다. 그가 1일 연주한 앙코르곡도 괴테의 ‘영웅적’ 인물상을 베토벤이 서곡으로 형상화한 ‘에그몬트’였다. 무엇을 상징하는지는 굳이 깊이 새겨볼 필요가 없을 것이다.

전임 주빈 메타의 지휘봉 아래서 세부의 정밀함을 잃은 채 ‘100명이 떠드는 소리’같다는 신랄한 비판까지 감수해야 했던 뉴욕 필은 전통적 ‘조련사’로서의 역할을 떠맡은 보수적 독일인 마주어의 지도로 다른 세계 정상급 악단들과 겨룰만한 사운드의 탄력을 회복했다. 음향만 따져보면, 4관(管)편성의 대편성 악단이 무대를 가득 채운 2일 연주가 더 만족스러웠다. 1일 ‘영웅’연주에서 무대 뒤편에 자리한 호른은 잔향을 남김 없이 잡아먹는 세종문화회관의 거대한 공간 안에서 매력 없이 건조한 색채를 드러내기 일쑤였다.

1일 협연자로 나선 중국계 피아니스트 헬렌 황은 그동안 몇차례의 서울 무대에서 보인 ‘모차르트 스페셜리스트’의 모습을 탈피, 차고 질기며 즉물적(卽物的)인 쇼스타코비치 피아노협주곡 2번을 협연했다. 그의 타건에는 활력이 넘쳤지만 쉼없이 달려나가는 데 비해 충분한 액센트가 주어지지 않아 다소 불안정한 모습을 보였고 이는 종종 악단과의 호흡이 흐트러지는 결과로 이어졌다. 헬렌 황은 앙코르 순서에서도 멘델스존의 ‘무언가집’ 중 ‘물레 노래’를 연주했는데, 쇼스타코비치의 협주곡에서와 비슷한 결점을 노출했다는 점에서 그다지 좋지 않은 전략이었다.

마주어의 전임자는 악곡의 극적인 설계에 능하지만 디테일에 약하다는 평을 받은 주빈 메타였고 후임자는 주관주의적인 설계가 너무 강해 때로 작품의 원형과 시대정신을 손상시킨다는 평을 받는 로린 마젤이다. 이 두 사람에 비해 마주어는 악곡 해석에서 특별히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지 않는다는 점이 오히려 개성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2일의 주 프로그램으로 선정된 말러 교향곡 1번에서도 마주어는 ‘말러 교향곡’을 ‘마주어 교향곡’으로 둔갑시키려 하지 않았다. 그의 개성은 오히려 디테일에서 살아났다. 4악장, 금관과 심벌을 폭발시킨뒤 곤두박질치듯 현을 깊은 저음으로 꺼져가게 하는 악구(樂句)들에서 한 순간도 전체 음향의 윤택한 밸런스를 잃지 않는 솜씨가 일품이었다.

말러의 교향곡 1번이 끝난 뒤 금관 단원들이 붉은 악마의 ‘비 더 레즈’ 유니폼을 입고 연주한 첫 앙코르곡은 레너드 번스타인의 ‘아메리카’였다. 대작곡가였던 말러는 1900년대에, 미국인에게 1960년대 시대정신의 한 아이콘으로 일컬어진 번스타인은 1960년대에 이 악단의 음악감독으로 재임했다. 이들이 가진 전통의 육중한 무게가 새삼 부럽게 느껴졌다.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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