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남 안주 출신인 고인은 1950년대말 연세대 철학과를 중퇴하고 30대의 나이에 뒤늦게 미술에 입문했다. 인천 동산중 교사 시절인 1963년 국내 첫 동판화 전시회를 열어 이 분야에서 선구적 역할을 했으며 판화 실력을 인정받아 1970년 동아일보 주최 제1회 국제판화비엔날레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고인은 1970년대 중반부터 유화로 장르를 바꾸어 무위자연과 무념무상 등 노장사상에 침잠해 그 정신을 작품으로 표현했다. 인생에 대한 달관을 절제된 색채와 단순한 구도로 표현한 작품들이다. 1980년대부터는 전국 곳곳의 전통 가옥을 답사하고 그 건축물의 단정한 이미지를 그림 속으로 끌어들여 더욱 정감어린 분위기를 연출해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이 같은 점을 인정받아 1990년 이중섭 미술상을 수상했다.
녹내장으로 인한 시력장애로 2000년 이후 거의 작품활동을 하지 못했던 고인은 1월17일부터 2월15일까지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에서 ‘무애청정(無碍淸淨)’ ‘명상’ ‘청풍명월’ ‘선(禪)’ 등 대표작을 선보이며 생애 마지막 개인전을 가졌었다.
이광표기자 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