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안의 불자들 화두 품고 중생곁으로

  • 입력 2002년 2월 28일 18시 35분


계룡산 무상사 국제선원에서 열린 동안거 해제식
계룡산 무상사 국제선원에서 열린 동안거 해제식
지난달 25일 오후 3시 계룡산 무상사(無上寺) 국제선원에서 열린 올 동안거(冬安居) 해제식.

동안거는 음력 10월 보름부터 다음해 정월 보름까지 겨울철 3개월간 불교 승려들이 외부 출입을 끊고 참선에 몰두하는 행사. 여름철의 선 수행은 하(夏)안거라고 한다.

이번 동안거의 해제일은 26일이지만 무상사 사정으로 하루 앞서 해제식을 가졌다.

무상사는 화계사 조실 숭산(崇山) 스님의 원력으로 세워진 외국인 전용 국제선원. 이날 해제식에는 미국 러시아 체코 이스라엘 대만 등 세계 각지에서 온 수행자 35명이 참석했다.

국적과 언어, 피부와 눈빛, 나이도 가지각색이지만 이들의 목표는 오로지 선(禪) 수행이었다.

국내 사찰의 동안거는 비구와 비구니가 엄격하게 구분돼 진행된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외국인 수행자를 위한 시설이 적어 무상사 동안거에는 비구 비구니 우바이(남자 신도) 우바세(여성 신도) 등 이른바 사부대중(四部大衆)이 모두 참석했다. 귀걸이를 한 여성 수행자도 있었다.

묵언(默言). 절 여기저기에 붙은 붓글씨가 동안거 정신을 보여준다.

수행자들은 입으로 말을 꺼내는 것을 삼가면서 자신들이 짊어진 화두에 매달려왔다. 이들의 일과는 새벽 3시에 시작돼 오후9시20분 취침 때까지 진행된다. 108배와 예불, 세차례의 짧은 공양를 빼면 하루 10시간에 이르는 좌선이 주요 일과다.

미국에서 온 한 수행자는 “바깥 세상은 여러 문제로 시끄럽지만 이곳에서는 이미 국제적인 평화가 이뤄진 것 같다”고 말했다. 대만에서 온 비구니는 이번 동안거에 대한 소감을 즉석에서 중국어 노래로 부르기도 했다.

오후 4시50분. 저녁 공양을 알리는 목탁 소리가 산사에 울려퍼진다. 간장과 김, 김치, 나물 등 네가지 반찬이 정갈하게 차려져 있다. 공양도 또다른 수행일 것이다.

한 참석자는 동안거를 마친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이번 동안거에서 산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한가를 알았다. 그래서 굉장히 행복했다.”

계룡산〓김갑식기자 gskim@donga.com

◆ 무상사 조실 대봉스님 "한국불교 禪전통 보유 집착버리면 선명해져"

“집착을 버리면 모든 것이 선명해집니다. 자기의 의견과 편견을 버리세요. 그러면 보는 것, 듣는 것, 느끼는 것 모든 것이 선명해집니다.” 계룡산 무상사의 해제식에서 만난 조실 대봉(大峰) 스님은 ‘Only don’t know’(오직 모를 뿐)라는 마음가짐이 수행의 필수라고 강조했다.

미국 예일대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그는 대학시절 반전 시위를 했고 졸업 뒤 4년간 병원 카운슬러로 일하기도 했다. 1977년 화계사 조실 숭산(崇山) 스님의 강연을 접한 뒤 삶의 전환점을 맞게 된다. 이후 미국 내 선원에서 행자 생활을 한 뒤 1984년 출가했다. 나이를 묻는 질문에는 “하늘과 같다”며 웃었다.

그는 “일본 불교와 접할 인연이 있었지만 차가운 느낌이 들었다”며 “하지만 한국불교는 선의 깊은 전통과 뚜렷한 가르침, 인정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번 동안거는 사부대중이 모인 매우 특별한 상황에서 진행됐고 모든 사람의 노력으로 성공리에 끝났습니다. 우리의 수행도 공짜는 없습니다. 우리는 수행에 도움을 준 모든 분들을 위해 보답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계속 수행하는 것입니다.계속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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