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정준모/천박한 ‘1등석 문화인’

  • 입력 2001년 12월 19일 18시 00분


연말이라서 그런지 도처에서 크고 작은 문화행사들이 열리고 있다. 뮤지컬 공연이 줄을 잇고 사람들은 일상에서 벗어나 공연장으로, 미술관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연말에 바쁠 텐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잠시라도 문화에 몸과 마음을 맡기고자 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다.

▼신분과시용 좌석등급▼

이렇게 공연장을 찾는 많은 사람들의 모습은 천차만별이다. 그 중에서도 요즘 공연장의 풍경 한 가지. 공연장 로비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서 이곳저곳으로 전화하고 공연에 동행하기로 한 사람들끼리 만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이내 안내방송은 곧 공연이 시작됨을 알리지만 공연장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드물다. 진정한 관객이라면 최소한 공연시작 10분 전에는 공연장 안에 들어가 자신의 자리를 찾아 앉고 일상의 무게를 덜어내고 오늘 만나게 될 공연 내용을 프로그램을 통해 일독해 보는 여유를 가져야 할 텐데 모두들 서두르는 기색이 없다.

그런데 그 여유의 이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조금은 입맛이 씁쓸해진다. 이들이 구입해서 들고 있는 입장권의 대부분은 로열석이나 S석 또는 A석 등이다. 표를 꺼내 연방 들여다보면서 동행인을 찾는 것처럼 보이지만 은근히 남들이 자신의 좌석권을 보아 줄 것을 기대하는 눈치다.

그리고 로비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이 이러한 수준 높은 공연장에 문화소비자로 와 있음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이 와중에 아는 사람이라도 우연히 만나게 된다면 오늘 공연을 위해 투자한 경제적 재화의 효과는 최상의 가치를 구현하게 되는 것이리라.

이러한 문화소비 행태는 열악한 문화생산자들의 경영적 측면을 자극해 1등석을 공연장의 조건과 상관없이 늘려놓는 결과를 낳았다.

총 객석의 40%를 육박하는 최상의 좌석은 어지간한 건축가도 구조적으로 설계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도 1등석 이상의 표는 양산되고 문화의 고급(?) 소비자들은 음향이나 관람조건은 따지지 않고 이를 구매한다. 아마도 1등석이니까 가장 좋은 좌석이라는 믿음이 앞서는 것일까.

이렇게 1등석을 선호하는 우리의 문화 소비 행태는 실은 우리의 일상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일종의 선민의식, ‘나는 남과는 다르다’는 의식이 저변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공연장에서뿐만 아니다. 도처에서 발견되는 문화적 천박성은 오늘의 우리 문화를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우리의 슈퍼브랜드 선호도와도 궤를 같이하는 이런 풍조는 고급 옷의 라벨을 옷 밖에 붙이는 형태로까지 발전했다.

공연문화에 있어서 이해와 참여보다는 좌석의 등급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과 같은 현상은 미술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자신의 기호와 취미에 맞는 작가와 작품보다는 유명작가의 작품만을 선호한다. 당연히 이러한 작가들의 작품가격은 오르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 가격이 높다고 불평한다. 이미 유명해진 작가의 작품이란 당연히 귀한 것임에도 말이다. 젊은 작가들의 좋은 작품을 고르려는 노력은 아예 하지도 않는다. 그림을 보는 눈을 가진 이라면 당연히 자신의 안목에 맞는 작가와 작품을 고르기 마련이며, 이러한 문화적 안목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돈 가진 이는 눈이 없고, 눈 가진 이는 돈이 없다”는 지적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자신만의 문화향유법 터득을▼

1960, 70년대 우리가 압축 경제발전의 모델을 창출했던 그 저력을 문화에도 그대로 적용시키려는 것은 분명한 오류다. 문화란 오늘의 삶의 방식이자 삶의 가치다. 남의 가치에 맞추어 가려는 눈치보기식 문화는 실은 일종의 콤플렉스다. 그 콤플렉스는 고가의 옷이나 공연장의 1등석을 통해 충족될 것으로 믿어보지만 이는 난센스다.

문화의 향기는 곰삭은 김치처럼 무던하게 문화를 통해서 얻어질 수 있다. 하루아침에 공연장 1등석에 앉아 있다고 문화가 고도 성장하거나 자신의 문화적 소양이 드러날 것이라고 믿어서는 안 된다.

어느 공연장이고 어디엔가 1등석에 버금가는 음향을 만날 수 있는 보물 같은 곳이 있다. 이를 찾아내 혼자만이 즐기는 방법을 터득할 때 우리는 진정한 문화인으로 태어날 수 있는 것이다.

정준모(미술비평가·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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