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김준엽 사회과학원이사장, 현대사 회고록 5권 완간

  • 입력 2001년 11월 14일 18시 37분


광복군 출신으로 고려대 총장을 지낸 김준엽(81) 사회과학원 이사장의 회고록 ‘장정(長征)’(나남출판)이 1987년 제1권 출간 후 14년만에 완간된다. 마지막 책이 될 제5권이 다음 주 발간되는 것.

김 이사장은 “나는 역사공부를 하고 있는 까닭에 한 조각의 ‘낙서(落書)’도 옛날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나의 보잘 것 없는 기록도 후세에 이 시대를 관찰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심정으로 회고록을 썼다”고 말했다.

김 이사장의 회고록은 1, 2권이 광복군 시절, 3권이 고려대 총장 시절, 4권이 무직(無職) 시절을 담고 있다. 1990년 제4권 발간 후 11년만에 발간되는 5권에서는 1949∼1982년의 평교수 시절과 1988년 사회과학원 설립 후의 시기를 정리했다.

김 이사장은 5권 머리말에서 “망국의 쓰라림과 민족해방 투쟁, 한국 전쟁, 그리고 이런 역경을 딛고 새 나라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나는 과연 무엇을 했는가를 늘 반성하며 살아왔다”고 밝히고 있다.

그는 1985년 고려대 총장직을 사임한 후 회고록 집필을 시작해 4년만에 4권의 회고록을 냈다. 이처럼 짧은 기간에 회고록을 쓸 수 있었던 힘은 “군사정권의 탄압에 대한 분노”였다고 그는 고백한다.

네 권의 ‘장정’을 내놓은 후 1988년 사회과학원을 창립한 뒤에는 다시 외부 활동에 바빠서 회고록 집필을 미뤄왔지만 이제 80세를 넘기면서 더 이상 나머지 회고록의 완성을 미룰 수 없어서 서둘러 회고록을 마무리했다는 것.

한국현대사에서는 드물게도 큰 도덕적 상처 없이 지조있는 지식인으로 존경받으며 살아 온 그의 회고록에는 한국현대사의 이면을 드러내는 사실들이 많이 담겨 있다. ‘장정’ 4권에서 1980년대 말 국무총리를 맡아달라는 노태우 정권의 요청을 끝내 사양했던 사연을 구체적으로 밝혔던 데 이어, 5권에서는 김영삼 김대중 정권의 관직 진출 요구를 고사했던 사실도 밝히고 있다. 그동안 관직 제의를 받은 것이 모두 12차례나 됐다는 것.

박정희 정권 시절부터 계속된 정치 참여 요구를 사절한 대신 그가 한 일은 1987년 헌법 개정 때 대한민국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것을 헌법 전문에 명시케 하고, 1993년 민족정기 앙양을 위해 임시정부 요인들의 유해 봉환과 구 조선총독부 건물의 철거를 건의해 관철시키는 등 국가의 정신적 기틀을 바로잡는 일이었다.

그는 “본분인 학자의 생활을 지키도록 노력한다”는 삶의 원칙을 고수했다. 그래서 그는 고려대 총장 사퇴 후 3년만에 사회과학원을 설립하고 중국과의 학술문화교류에 전념해 왔다. 지금까지도 그는 중국의 8개 명문대에 한국연구소를 설립토록 하고 한국과 중국간의 친선에 노력하는 등의 활동을 늦추지 않고 있다.

이 책의 마지막에는 김 전 총장의 학력 경력과 저술목록뿐 아니라 자신이 편찬에 관여했던 책, 상훈(賞勳), 국제학술회의 참여활동 상황 등 자신의 일생을 파악할 수 있는 사항들을 상세히 정리해 성실한 역사가로서의 면모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고 있다.

<김형찬기자>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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