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 '가려진 상처'규명 본격화…6·25 민간인학살 관심고조

  • 입력 2001년 9월 11일 18시 21분


이른바 ‘양민학살’로 지칭돼온 한국전쟁 전후의 민간인 희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경남 거창사건 희생자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96년)과 제주 4·3사건 특별법(2000년)이 제정된데 이어 국회의원 40여명이 6일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통합법안’을 발의했다.

학계에서도 민간인 학살에 대한 연구가 본격화되고 있다. 최근 출간된 ‘한국전쟁과 함평양민학살’(사회문화원)이 대표적인 예. 50년 전남 함평에서 일어난 민간인 학살을 목격한 김영택씨(한국역사기록연구원장)가 펴낸 이 책은 각종 자료와 증언을 토대로 한 실증적 연구로 평가된다.

하지만 전국 각지에서 자행된 민간인 학살의 전모를 파악할 수 있는 연구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아 민간인 학살문제는 한국현대사의 거대한 블랙홀로 남아있다.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은 이유〓연구자들이 말하는 ‘민간인 학살’이란 정부가 수립된 1948년부터 휴전협정이 체결된 1953년 사이에 국군 인민군 경찰 미군 등에 의해 죄 없는 비무장민간인이 재판도 거치지 않은 채 살해된 것을 일컫는다.

4·19혁명 직후 한국전쟁 와중의 민간인 학살 사례가 속속 밝혀졌으나 5·16 군사쿠데타 이후 정부의 탄압으로 이 문제를 거론하는 것 자체가 금기시 됐다. 함평, 거창, 경남북 피학살자 유족회 등 당시 진상규명을 요구했던 유족들은 5·16 이후 군사정부에 의해 ‘반국가단체구성혐의’로 구속됐고 일부는 사형까지 선고받았다.

진실을 밝혀달라는 기본요구조차 ‘이적행위’로 처벌되는 상황이 되자 피해 유족이 발설을 꺼렸고 현대사 연구자들도 이 문제를 회피할 수 밖에 없었다. 이에 따라 민간인 희생의 1차 연구자료인 유족 등 현장 목격자의 증언 채록이나 희생자 유골 발굴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87년 민주화항쟁 이후 분위기가 바뀌어 ‘거창 양민학살-그 잊혀진 피울음’(1988년), 노근리사건을 증언한 ‘그대, 우리의 아픔을 아는가’(94년) 등 증언 중심의 책들이 발간됐다. 특히 광주민주항쟁 피해자 유족들의 보상이 이뤄진 것은 민간인 학살 피해자 유족들이 입을 여는데 힘을 실어줬다. 2000년 미국의 노근리 학살 시인은 진실규명 요구의 도화선이 됐다.

▽최근 연구경과와 과제〓1999년 발간된 서중석 교수(성균관대)의 ‘조봉암과 1950년대’(역사비평사)는 이 문제에 관한 본격적인 연구서다. 지난해 ‘전쟁과 사회’(돌베개)를 발간한 김동춘 교수(성공회대)는 학살을 ‘과잉진압의 정치학’이라는 틀로 분석했다. 한홍구(성공회대) 강창일(배재대) 김영범(대구대) 조시현 교수(카톨릭성심대)와 이도영 박사(한국현대사) 등이‘민간인학살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범국민위원회(홈페이지 www.genocide.or.kr)’의 활동을 학술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다.

남북 통일을 앞두고 민간인 학살은 반드시 정리하고 넘어가야할 문제지만 이 분야에 대한 연구는 시작에 불과하다. 한홍구 교수는 “누가, 왜, 언제, 어디서, 누구를 어떻게 살해했는지를 6하(何)원칙에 따라 밝혀내야 하는데 이것조차 제대로 돼 있지 않아 많은 경우 ‘의혹’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현실”이라고 말했다.

<정은령기자>r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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