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책]매력적 인간 이중섭 '날줄과 씨줄'

  • 입력 2000년 11월 24일 18시 45분


□ 아름다운 사람 이중섭 / 전인권 지음 / 302쪽 1만5000원 / 문학과 지성사

우리 화단에서 이중섭(1916∼1956)만큼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화가도 없을 것이다. 생명력이 넘치는 화풍과 불우했던 삶이 어울려, 미시적인 분석에서부터 ‘아아 중섭!’식의 감상적 접근까지 다양한 조명의 스펙트럼을 열어놓았다.

이 책은 그의 삶을 날줄로, 화풍 분석을 씨줄로 짜내 다양한 시각을 제공하면서 어렵지 않게 읽힌다. 닭 소 군동(群童) 등 그가 즐겨 그린 소재는 어떤 체험에서 출발하는가, 왜 그는 원형(圓形)의 구도를 자주 사용했는가, 고구려 벽화는 어떤 영감의 원천을 제공했는가 등의 질문에 대한 해답을 풀어나가다 보면 그의 질곡 많은 삶도 가까이 지켜본 듯 다가오게 만든다.

중섭은 말년에 고은이 ‘원형광태(圓形狂態)’라 이름붙인 특이한 행동을 보였다. 문손잡이, 도넛, 접시 등 둥근 모양을 보면 기뻐하면서도 왈칵 놀라 도망치는 이상행동이다. 친구들이 이유를 물으면 ‘둥근 것이 참 좋단 말야’라는 모호한 대답을 하곤 했다.

저자는 그가 ‘원형이란 너무도 아름다운 것이며, 다른 한편 침범해선 안되는 것’이라는 이중적 감정을 갖고 있었다고 말한다. 군동(群童)모티브의 원형인 그의 가족 그림은 즐겨 둥근 구도를 취한다. 원형은 현실의 어려움 때문에 떨어져 있는 가족과 한덩어리가 되려는 그의 열망을 암시한다.

그런데 둥글게 연결된 가족들은 머리가 하나같이 비틀려 있다. 또 서로 간질이는 등 접촉을 즐기고 있다. 곧 ‘어리광’을 부리고 있다는 것. 그것은 유년의 파라다이스로 퇴행하고픈 환동(還童)의 정신적 미학으로 집약된다. 이런 가족의 모습은 나아가 ‘십장생도’ 또는 ‘일월도’를 닮은 ‘도원(桃園)’시리즈를 통해 산천초목과 모든 생령이 무념무상으로 어울리는 차원으로 확대된다.

저자는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이 위협받던 식민지와 전쟁의 시대에, 소 닭 어린이 물고기 게 새 등 ‘가상의 종족’을 통해 그는 모든 생명의 성스러움과 의미심장함을 옹호하며 그 안녕과 번영을 빌었다”고 이중섭 예술의 근본 특성을 규정한다.

그는 말년 작품 ‘길떠나는 가족’에 특히 주목한다. ‘떠남’의 모티브는 유독 이 작품에서만 발견된다는 것. 농부인 아버지가 고삐를 매고, 우마차에 탄 가족들이 더없이 행복한 표정을 하며 나들이에 나선다. 저자는 죽음을 상징하는 힘없는 연노랑, 예외적으로 평화로운 모습의 소, 꽃상여를 연상시키는 구도 등을 통해 이 작품이 ‘죽음 너머로 이사한 그림’이라고 말한다. 감상적 어투가 없이 담담한 분석이지만 읽는 사람은 코끝이 찡해진다. 책 전체를 관통하는 매력이기도 하다.

<유윤종기자>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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