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해튼은 지금…'암소들의 천국'

  • 입력 2000년 8월 1일 18시 39분


맨해튼은 지금 암소들의 천국이다.

녹초지가 풍부한 센트럴파크와 워싱턴파크 같은 공원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는 것은 물론 록펠러센터 건물 앞이나 월스트리트 도로 곳곳에서도 서 있거나 앉아 있는 암소떼를 발견할 수 있다. 심지어 그랜드 센트럴역 구내까지 들어와서 꼬리를 흔들며 뉴욕시민들의 출퇴근길 친구가 되고 있다. 물론 살아 있는 암소가 아니라 조각이긴 하지만 아이들은 암소에 올라타고 노느라 신이 났고 관광객들은 함박웃음을 머금은 채 이들과 사진을 찍느라 바쁘다.

수백마리나 되는 이 암소들은 하나같이 피부색이나 무늬가 다르다. 어떤 암소는 대서양에서 방금 빠져나온 듯 온통 푸른빛이고 어떤 암소는 몬드리안의 기하학적 추상화 무늬로 덮여 있다. 정육점에서 뛰쳐나온 듯 부위별 고기 이름을 달고 있는 암소도 있고 뉴욕 양키스 유니폼을 입은 암소도 있다. 이름도 갖가지다. 미키 마우스를 닮은 ‘무(Moo) 마우스’, 이집트 파라오 옷차림의 ‘투탄카우멘(Tutancowmen)’, 황금색 몸체에 다우 존스 주가 그래프를 몸에 새기고 있는 ‘카우 존스(Cow Jones)’….

뉴욕(New York)시는 6월15일부터 쇄도하기 시작한 이 암소들의 방문을 축하해 시 이름을 아예 무욕(Moo York)시로 바꿨다.

고층빌딩의 숲이 어떻게 암소들의 서식지로 바뀔 수 있었을까. 바로 도시 단위의 총체적 전시예술행사인 ‘카우 퍼레이드’가 2000년 행사의 도시로 뉴욕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98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시작된 ‘카우 퍼레이드’는 한 도시의 예술가들이 실물 크기의 암소조각을 캔버스 삼아 그 도시의 예술적 분위기를 풍부하게 담아내는 것. 이 조각상들은 도시 곳곳에서 일정기간 전시된 뒤 경매에 부쳐지고 그 기금은 각종 자선활동에 쓰이게 된다.

취리히에서 800마리나 나타났던 이 암소들은 99년 340마리가 시카고를 점령했고 올해 뉴욕을 접수하면서 500마리로 불어났다. 이들 ‘카우 퍼레이드’는 예술행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어마어마한 관광효과를 낳아 올해는 뉴욕시뿐만 아니라 인근 뉴저지주 웨스트오렌지와 코네티컷주 스탐퍼드까지 확대됐다. 시카고에서 펼쳐진 ‘카우 퍼레이드’는 이 행사만으로 무려 200여만명의 관광객을 불러들여 1억달러가 넘는 관광수익과 350만달러의 자선기금을 모으는 기염을 토했다.

스위스의 전통적인 젖소인 브라운 스위스를 모델로 유리섬유로 만들어지는 암소 조각상의 제작비용은 마리당 7500달러. 풀을 뜯는 모습, 앉아 있는 모습, 서 있는 모습 3가지 포즈를 기본으로 하지만 월드 트레이드센터 앞에서 쌍둥이 빌딩 모습을 흉내내기 위해 뒷발로 서 있는 ‘트윈 카우’ 같은 파격적인 모습도 간간이 눈에 띈다.

뉴요커들은 뉴욕시 전체 500마리 중 맨해튼에만 400여마리가 집중돼 있는 이들 암소의 등장에 한편으로는 즐거워하면서도 왜 암소인지에 대해 어리둥절함을 감추지 않고 있다.

‘카우 퍼레이드’가 암소를 선정한 이유는 암소가 귀엽고 순해 누구에게나 친근감을 안겨주는 동물이면서 동시에 도시에선 발견할 수 없는 동물이어서 시민들에게 놀라움을 안겨 주리라는 점에 착안했기 때문이다. 물론 예술가들에게 3차원의 넓은 캔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동물이라는 점도 중요했다.

하지만 맨해튼에서 만난 한 택시운전사의 해석이 더욱 그럴듯해 보였다.

“뉴욕증시가 하도 오랫동안 황소 장세(Bullish Market)를 누리다 보니 암소 생각이 절실해진 것 아니겠습니까.”

<권재현기자>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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