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사회의 새좌표]윤영민/사회학

  • 입력 2000년 6월 12일 19시 37분


디지털 시대에 인간은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할까. 나아가 어떤 사회구조 혹은 사회질서가 출현할까. 그것은 지금까지와 얼마나 다른 모습일까. 디지털 문명으로 가는 길목에서 이러한 의문들이 사회학적 탐구를 추동(推動)하고 있다. 현 단계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을 대표하는 인터넷이 가져오고 있는 사회현상을 살펴보면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데 몇 가지 경로가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 디지털 매체는 현실의 사회조직을 직접적으로 변화시킨다.

대면적 만남부터 TV, 전화에 이르는 커뮤니케이션 기술은 도달범위와 풍부함 사이의 ‘교환관계(trade-off)’를 벗어날 수 없었다. 그것은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도달하려 할수록 의사소통의 풍부함이 떨어지게 되는 법칙이다. 최근까지도 사회조직은 이 법칙에 근거해서 편제를 구성했다. 그런데 인터넷은 그 교환관계를 해체시키고 있다.

초미의 관심은 과연 그 해체가 사회조직을 위계적 관료제에서 수평적 네트워크로 변모시킬 것인가이다. 그것은 대규모 국가기관과 재벌 기업 대신에 벤처기업과 같은 소규모 조직들의 네트워크가 발달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또 다른 쟁점은 그 해체가 사회조직의 울타리를 얼마나 약화시킬 것인가이다. 문화와 금융의 국제적 흐름을 보면 국가간의 경계가 무의미해지고 있으며 국가와 시민사회, 국가와 시장, 시장과 시민사회 사이의 경계도 빠른 속도로 약화되고 있다. 경계의 약화가 재설정 수준에서 멈출지 아니면 완전한 해체에까지 진행될지가 문제이다.

둘째, 디지털 매체는 사이버공간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창출한다.

사이버공간에는 현실공간과 구별되는 행동과 사회관계가 전개된다. 현실공간에서는 사람들이 의견이나 감정의 표현을 조절하고 억제하게 만드는 법률 규범 보복 책임의식 체면과 같은 다양한 장치가 발달돼 있다. 그러나 사이버공간에서는 이러한 억제장치들이 힘을 잃는다. 사회학도들은 탈억제(disinhibition)가 여러 영역에서 어떻게 나타나는가에 관심을 갖는다. 탈억제 덕분에 가상공동체(cyber-community)가 발달하고 다양한 목소리가 분출되는 반면, 바로 그것 때문에 채팅, 포르노그라피, 네트워크 게임 등에의 몰입이 나타나고 인신공격성 발언(flaming)이나 사이버 사기가 만연하게 된다.

클릭만 하면 이 문서에서 저 문서로, 이 사이트에서 저 사이트로 이동할 수 있는 하이퍼텍스트(hypertext) 기술이 만들어내는 사고(思考) 유형과 사회관계도 관심의 대상이다. 하이퍼텍스트는 문서의 어느 부분이나 바로 접근할 수 있기 때문에 인쇄매체에 고유한 선형적(linear) 사고를 넘어설 수 있게 한다. 또한 하이퍼텍스트는 이동비용을 최소화함으로써 정보 수용자의 선택능력을 극대화하기 때문에 사이버공간에서는 저자와 독자, 정보 생산자와 수용자 사이의 권력 관계가 뒤집어질 수 있다.

셋째, 사이버공간에서 발달한 행동과 사회관계가 현실의 사회조직에 변화를 초래한다.

무엇보다 사회를 구성하는 주체의 성격이 바뀔 수 있다. 마크 포스터(Mark Poster)에 의하면 전통적인 사회학의 전제가 되었던 합리적이고 중심적이며 자율적인 개인 대신에 복수(複數)이고 분산적이며 불안정한 정체성으로 끊임없이 호명되는 주체가 등장한다. 이 주장을 수용한다면 탈사회학(post-sociology)이 모색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사이버공간이 시민과 소비자의 권력을 강화하리라는 전망도 있다. 그 동안 권력과 자본에 의해 주류(主流) 매체로부터 배제됐던 시민과 소비자들에게 풍부한 커뮤니케이션 자원이 주어지고 그들의 목소리가 커지게 된다는 주장이다. 이는 디지털 시대가 지금보다 민주적이 될 것임을 함축한다. 이와는 반대로 감시사회가 출현하고 사회적 불평등이 더욱 악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19세기 사회학자들은 누구보다 날카롭게 산업사회를 분석해 냈다. 21세기 사회학자들로부터 디지털 사회에 대한 탁월한 해석이 나오길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윤영민<한양대 정보사회학과교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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