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굿섹스/건전한 섹스의 도덕적 경계선 찾기

  • 입력 2000년 3월 10일 19시 21분


□굿섹스

레이몽 안젤로 벨리오티 지음/민음사

도덕적으로 허용할 만한 성행위와 허용할 수 없는 성행위의 판단 기준은 무엇인가?

미국 뉴욕주립대 교수(철학)인 저자는 ‘좋은 섹스란 무엇인가’란 부제의 이 책(원제목 Good Sex:Perspectives of Sexual Ethics)에서 성행위의 도덕적 경계선을 찾고자 한다. 그렇다고 해서 단 하나의 도덕적 기준을 강요하는 것은 아니다. 칸트주의 자유지상주의 맑스주의 여성주의 그리고 다양한 성적 행위에 대한 소개와 비판을 통해 성에 관한 균형 있는 시각을 가질 수 있게 해 준다.

성적 행동을 윤리적으로 판단할 경우 오직 결혼이라는 테두리만을 주장하는 전통주의자들이 있는가 하면 전적으로 개방된 자유연애나 동성애를 허용하는 자유주의자들도 있다. 여기서 저자는 ‘타인을 이용하는 행위는 부당하다’는 최소한의 원칙을 내세운다. 하지만 ‘이용’의 방법에도 강제, 기만, 협박, 권유, 강제적 제의 등 다양한 경우가 있을 수 있고 이 경우 어디까지를 ‘이용’이라고 판단하는가는 간단치 않다. 답은 독자가 찾아야 한다. 저자는 최소한의 원칙과 관점을 제시할 뿐이다.

미국에서 고전적인 윤리학적 관점으로 성문제를 검토했다는 이 책이 한국사회의 관점에서는 상당히 개방적인 성윤리로 평가될 수도 있다. 하지만 위선으로 포장된 성문제 논의 이면에 이미 엄청난 규모의 ‘섹스시장’이 형성돼 있는 한국사회의 기형적 성문화를 생각해 본다면 이는 오히려 ‘건전한 성 담론’을 이끌어 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저자는 ‘성윤리의 다섯 층위’라는 틀과 이를 기준으로 한 ‘성도덕 지수 산출 공식’을 제안한다. 자유지상주의적 동의(동의), 일반적인 도덕적 고려(고려), 성적 착취(착취), 제3자에게 미치는 영향(삼자), 광범위한 사회적 배경(배경). 현실 속에서 이 다섯 층위의 기준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성도덕 지수〓동의×(고려+착취+삼자+배경/2)’

이 공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동의’다. 자유지상주의적 동의가 있었을 경우 1점, 없었다면 0점을 주고, 나머지 항목은 각 100점이 만점이다. 성도덕 지수의 만점은 350점, 도덕적 허용의 경계선은 280점으로 본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자유지상주의적 동의’가 인정될 때에도 “아주 불평등한 흥정 능력, 심리적 취약성의 현저한 차이, 궁핍한 환경으로 인한 억압” 등 다양한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자유지상주의적 동의에 근거한 계약의 존재여부는 도덕적으로 자명하지 않다.”

여기서 산출되는 점수가 상대적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도 이 이론의 한계는 분명하다. 저자 역시 “다섯 층위의 성도덕이 불가피하게 불명확한 형식을 띨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인정한다. 하지만 그의 관심사는 관념적으로 선호하는 입장을 따라오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섹스라는 주제에 대한 공개적인 담론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 올리고 그에 적절한 물음을 제기해 보는 데 있다.

근래에 성 문제를 둘러싼 한국사회의 논란이 주관적 비난의 혼재로 인해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는 점을 고려한다면 합리적 판단 기준을 마련하려는 벨리오티교수의 시도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구승회 옮김 448쪽 1만5000원

<김형찬기자> 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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