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옥 노자강의]"철학 보편화"호평…자화자찬 흠

  • 입력 2000년 2월 28일 19시 51분


작년 11월부터 방영돼 화제를 모았던 EBS의 교양강좌 ‘도올 김용옥의 알기쉬운 동양고전-노자와 21세기’가 지난주 막을 내렸다.

지상파TV에서 동양고전을 주제로 56회에 걸친 장기강좌를 기획해 시청자들을 TV 앞에 모았다는 점은 매우 바람직한 문화현상이다. 김씨와 담당자들의 치밀한 준비와 연출이 만들어 낸 강좌의 ‘완성도’는 교양강좌의 한 전범을 보여줬다.

그럼에도 지나칠 정도로 김씨 개인에 끌려다닌 듯한 이 강의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다. 특히 김씨 특유의 자화자찬은 때때로 강의의 ‘양념’ 수준을 넘어 거의 40분 내내 지속되기도 했고, 자기 저서를 비판한 모 일간지 기자에 대한 원색적 비난에 한 강좌를 모두 소비하기도 했다. 그에 대한 책임은 일차적으로 김씨가 감수해야겠지만, 그런 내용이 거의 그대로 방영된 책임은 아무래도 편집권을 가진 EBS가 져야 할 것이다.

“나는 세계 최고 수준의 철학자”라거나 “너무도 완벽한 한문 실력과 스칼라십을 갖추고 있다”는 등의 자아도취성 발언은 강의를 ‘구경하는 재미’를 넘어 강의내용과 김씨 자신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기도 했다.

그가 학자로서 인정받는 것은 교양강좌에서 인기 스타로 자리잡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다. 이미 알려진 문헌의 화려한 나열과 입담 좋은 해석이 그의 학문적 업적이 되지 않으리란 점은 김씨 스스로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 때문에 학계는 그에 대해 ‘비평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그에 대한 평가는 학계가 아니라 그가 그토록 비판한 언론과 ‘강호(江湖)의 동양철학자’들에게서 나온다. 그의 강의가 화제를 모으면서 신문사에 답지한 ‘강호 고수(高手)’들의 글과 전화는 김씨의 자리가 왜 학계가 아니라 ‘강호’였는지를 잘 드러내 주는 것이었다.

김씨와 강호 고수들 사이에는 뚜렷한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내가 어느 분야에 어떤 업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 ‘내가 최고’라는 것이다. 근거는 아주 단순하다. “나만큼 한문을 제대로 하는 사람이 없고” “나만이 동양철학의 진수를 꿰뚫어 안다”는 것이다. ‘고수’들은 김씨의 강의나 저술 곳곳에서 오류을 찾아 지적하며 실력을 과시한다.

진지한 비판은 오히려 소장 학도들에게서 나왔다.

김용옥의 32권 저서 중 21권을 읽었을 만큼 그에게 애정을 가져 왔다는 이상수씨(연세대 철학과 박사과정 수료)는 ‘에머지새천년’ 3월호에 실린 ‘철학의 세속화인가 세속의 철학화인가’에서 그의 저술 전반을 넘나들며 그를 비판한다. 이씨는 “사소한 성찰을 자랑하고 그에 집착”하는 김씨를 “썩은 쥐를 물고 가며 빼앗길까 전전긍긍하는 올빼미”에 비유하며 “훌륭한 주석가” 이외에 ‘철학자’로서 내놓은 업적이 무엇이냐고 질책한다.

출가경력을 가진 불교학도로 ‘섭대승론석(攝大乘論釋)을 번역하기도 한 변상섭씨는 최근 ‘김용옥선생 그건 아니올시다’(시공사)라는 저서에서 김씨의 불교관에 대해 본격적으로 비판했다.

언어의 벽을 넘어 불립문자(不立文字)의 수행으로 깨달음에 이르러야 할 불교의 가르침을 독서와 주석과 토론을 통해 접근하는 김씨의 관점을 비판하고, 김씨의 불경 번역에 대해서도 조목조목 비판을 가했다.

주석가든 작가든 남들이 함부로 표절할 수 없는 독창적 사유를 남기면 철학자로 평가된다.

또 철학자가 아니면 어떤가. 대중철학의 전도사든 성실한 주석가든 자신의 몫이 역사에 평가되는 길은 여러 가지이고 이런 면에서 김씨는 일단 성공을 거둔 셈이다.

김씨의 저력을 아는 사람들은 이제 조용히 들어앉아 전념하겠다는 ‘몸 철학’에서 그가 자신의 천재(天才)를 확인시켜 주기를 기대한다.

<김형찬기자·철학박사> 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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