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독서]'20세기의 역사'/각분야 최고의 필자가 쓴 '20세기'

  • 입력 2000년 2월 18일 19시 23분


▼'20세기의 역사' 마이클 하워드·로저 루이스外 지음/가지않는길 펴냄▼

이 책은 보통 책을 보는 순서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훑어보아야 한다. 먼저 펼쳐볼 곳은 본문이 끝나는 517쪽이다.

ABC순이 아니라 본문 26장의 각 장마다 관련 주요 논문과 저작을 소개한 ‘더 읽을거리(참고문헌)’, 1년 단위로 정리된 ‘역사 연표’, 우주비행사 유리 가가린으로 시작해 힘과 에너지로 끝나는 ‘찾아보기’ 등 부록이 모두 127쪽 분량. 전체 지면의 6분의 1이 관련자료를 소개하는 데 할애됐다.

영국 옥스퍼드대 출판부가 1998년 기획발간한 이 책은 부록에서 완성도가 단숨에 확인된다. ‘책 한 권으로 한 세기의 역사를 정리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에 대해 책 내용이 얼마나 압축되고 걸러진 정보인가를 증명한다.

본문으로 들어가 보자. 인구사 연구의 대가로 꼽히는 83세의 윌리엄 맥닐 전 미국 역사학회장(시카고대 명예교수)은 ‘인구증가와 도시화’의 장에서 “1900년과 2000년 사이에 인간종(種)이 생물학적인 팽창을 계속해온 것은 인류역사에서 유일하고도 예외적인 일로 남게 될 것”이라며 인구감소를 예견한다.

농업분야에서의 녹색혁명, 의학의 발전 등이 이런 예측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은 아니다. 맥닐은 심지어 중국과 서구사회에서의 피임보편화조차 “통계학상 어떤 결과를 낳을지 분명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맥닐의 탁견은 20세기 의학 발전에 대해 “전염병을 일으키는 유기체가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급격하게 변화시킴으로써 생물의 진화가 엄청나게 빨라지게 만들었다”고 설명한 대목에 있다. 현대의학계가 20세기 중반 연속적으로 전염병 박멸을 선언했지만 에이즈 등 새로운 질병이 나타났다는 것.

애덤 로버츠(옥스퍼드대 국제관계학 교수)는 ‘세계 공동체를 향하여? 유엔과 국제법’의 장에서 20세기를 ‘국제법과 국제기구의 시대’라고 명명한다. 그에 따르면 20세기는 ‘국가주권’이라는 관념과 ‘초국가적 질서’라는 관념 사이의 대립이었으며 어느 하나도 상대를 누르고 승리할 수 없다는 사실을 경험한 시대였다는 것.

‘20세기의 역사’의 기획은 그 자체로 20세기 역사학의 관심사 변화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원로사학자로 이 책의 번역에 참여한 차하순 서강대명예교수는 “20세기 초의 대표적 역사서인 오스발트 슈펭글러의 ‘서구의 몰락’ 같은 책이 철저히 유럽 중심적이라면 이 책은 비서구사회의 변화도 중시하는, 말 그대로 ‘세계사적 관점’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 차이이다. 또 역사가들이 이 책의 경우처럼 현대사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20세기 역사학계에서 일어난 중대한 변화”라고 설명했다.

이 책의 1부는 과학 경제 문화 시각예술의 변천을 부문별로 조망한 ‘20세기의 구조’. 2부와 3부는 20세기의 중심축인 2차대전을 분기점으로 그 전과 후의 유럽과 미국 일본의 변화를 정리했다.

4부는 중국 등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남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구영연방에 할애.

필자는 26명. 역자도 20명에 이른다. 각 장의 필자는 그 주제에 관해 ‘당대 최고’로 평가받는 인물들.

동아시아 연구자인 이리에 아키라 하버드대 역사학과 석좌교수, 중국 연구의 1인자로 꼽히는 조너선 스펜스 예일대 교수, 인종관계 전문가인 테렌스 레인저 옥스퍼드대 교수…. 여기에 79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스티븐 와인버그, 미술평론가 노버트 린튼, 런던경제대학원(LSE) 원장을 역임한 사회학자 랠프 다렌도르프까지 참여했다.

주제별로 최적의 필자가 쓴 글이기에 관심있는 분야만 발췌해 읽는 것으로도 적잖은 지적 수확을 거둘 수 있다. 644쪽 2만9000원

<정은령기자>r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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