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 독서]'정현종 깊이읽기'/老시인의 들끓는 숨과 꿈

  • 입력 1999년 12월 17일 19시 23분


▼'정현종 깊이읽기' 이광호 엮음/문학과 지성사 펴냄▼

‘한없는 꽃밭/코를 찌르는 향기/큰 숨결 한마당/밀려오는 게 무엇이냐/막힌 것들을 뚫으며/길이란 길은 다 열어놓으며/무한 변신을 춤추며/밀려오는 게 무엇이냐/오 시(詩)야 너 아니냐’(밀려오는 게 무엇이냐)

여기 시인이 있다. ‘큰 머리통에 사자갈기처럼 터벙한 허연 머리칼’을 가진 그는 ‘김춘수의 내면탐구와 김수영의 현실비판을 종합, 독특한 자기의 길을 걸어’ 성공했다.

그의 시는 ‘언제나 강인한 유머 감각을 발동시켜서 삶의 고통스러움을 신나게 웃음과 뒤섞는다’. ‘우주와의 에로스적 친화’역시 그의 작품에서 돋보이는 특징이다.

인용문은 김병익 고(故)김현 이상섭 이광호의 시인 정현종(연세대 교수)론이다. 그가 17일 이순(耳順)을 맞았다. 때맞춰 발간된 ‘정현종 깊이읽기’(이광호 엮음·문학과지성사 펴냄)는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본 시인의 진면목을 우리에게 펼쳐 보인다.

70년대부터 최근까지 쓰여진 18편의 글은 본격적 평론부터 대담, 자전에세이, 연대기, 벗들의 인상기 등 다양한 형식에 걸쳐있다.

엮은이는 그의 시가 가진 ‘무겁지 않음’에 주목한다. 한국의 현대문학이 현실의 무거움과 맞서느라 그 역시 무거움에서 벗어나지 못한 반면, 정현종의 시는 사물과 생명의 숨과 꿈을 들끓게 하면서도 고통과 절망을 ‘공중으로 띄워낸다’는 것.

정과리(충북대 교수)는 환경에 대한 시인의 관심을 설명하면서 ‘그가 생명을 절대적 신념으로 예찬하기 보다는, 생명의 구체적인 활동에 초점을 맞춘다’고 말한다. 문명을 거부하기 보다는 문명의 숨가쁨에 대한 반성으로 ‘생명’을 제시한다는 분석이다.

시인은 자전적 에세이 ‘나의 유토피아, 화전’에서 ‘자기의 생명력으로 육화하면서 배고 있었던 모태로서의 공간’인 고향(경기 화전)의 자연이 자신에게 시적 자질을 제공했다고 소개한다.

‘더 맛있어 보이는 풀을 들고/풀을 뜯고 있는 염소를 꼬신다/그저 그놈을 만져보고 싶고/그놈의 눈을 들여다보고 싶어서. /그 살가죽의 촉감, 그 눈을 통해 나는/나의 자연으로 돌아간다’(나의 자연으로)

시인의 지인과 후학들은 17일 시인이 즐겨 산책하는 숲 언저리의 음식점에서 ‘정현종 깊이읽기’ 출판기념회를 겸한 이순잔치를 열었다. 74년 ‘고통의 축제’부터 99년 ‘갈증이며 샘물인’까지 7권의 시집을 묶은 시선집 1,2권도 이날 발간됐다.

〈유윤종기자〉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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