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책]千의 얼굴을 가진 '예수의 역사 2000년'

  • 입력 1999년 12월 17일 19시 23분


▼'예수의 역사 2000년' 야로슬르프 펠리칸 지음/동연 펴냄▼

그가 세상에 온 지 2000년이다.

그, 예수를 믿건 믿지않건 그의 탄생을 기점으로 삼은 두번째 밀레니엄 전환기의 떠들썩함에서 누구도 자유롭지 않다. 그러나 이 소란 속에 정작 예수의 존재 그 자체는 잊혀져 가는 분위기다.

금세기 최고의 교회사학자로 꼽히는 야로슬라프 펠리칸(76). 그가 쓴 이 책은 예수 탄생 후 20세기에 걸친 예수상(像)의 변천을 거대한 모자이크화로 그려낸 역작이다. 원제는 ‘Jesus Through The Centuries’.

기독교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이 책을 외면하려는 사람에게는 부제가 ‘문화사 속의 그리스도의 위치’임을 서둘러 말해야겠다. 저자는 서양 기독교 문명이 각각의 시대상황에 따라 어떻게 예수의 모습을 다르게 이해했는지를 규명한다. 그러므로 저자가 인도하는 대로 예수상의 변화를 좇아가는 것은 서구문명사를 이해하는 것과 동전의 양면같은 것이다.

저자는 당대 예수의 모습을 신학자와 교회의 해석에서만 찾지 않는다. 링컨 톨스토이 간디의 사회적 발언과 레오나르도 다 빈치, 엘 그레코, 샤갈의 회화 괴테와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한 구절이 모두 ‘당대 예수’를 증거하는 사료로 동원된다.

책의 구성은 서설과 18장. 1세기부터 20세기까지 ‘랍비’ ‘왕 중 왕’ ‘평화의 왕’ ‘해방자’ ‘세계에 속한 분’ 등 거의 매 세기별로 바뀌는 예수상이 묘사된다.

종교개혁기인 16세기, 개혁세력 급진파의 리더 토마스 뮨처는 “내가 자기들의 왕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 나의 원수들을 이리로 끌어다가 내 앞에서 죽여라”(누가복음)는 ‘말씀’을 빌어 무수한 피흘림을 정당화했다.

3세기 후인 1856년 미국의 링컨은 자신의 두번째 대통령 취임연설에서 “사람이 다른 사람 얼굴 위에 흐르는 땀으로부터 자신의 빵을 착취하기 위해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려 한다면 미쳤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며 ‘해방자 예수’의 상을 세웠다.

톨스토이가 그의 마지막 편지에서 ‘열아홉세기동안 기독교인들은 이렇게 살아왔습니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기독교를 지지하는 군대나 폭력을 인정한다든지 하는 명백한 모순 속에서’라고 썼듯이 서구 문명사에서 예수상은 다른 시대에는 물론 당대에도 서로 모순되고 충돌하기 일쑤였다.

20세기에 부각되는 예수상은 제국주의라는 19세기의 업보에 잇닿아 있다. 제국주의를 통해 기독교를 이식당하는 것은 “나는 동과 서의 우스꽝스러운 혼합물, 어디에서도 고향을 느끼지 못하는…”(간디)이라는 소외의 시작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저자는 20세기 예수상 정립의 가장 중요한 반성이 ‘가톨릭 교회는 타 종교에서 발견되는 옳고 성스러운 것은 아무것도 배척하지 않는다. 그들의 규율과 교리도 거짓 없는 존경으로 살펴본다’는 65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선언이라고 지적한다.

‘예수’라는 하나의 렌즈로 서양문화 2000년의 문학과 미술 음악 역사학 신학을 이토록 다채롭게 조망해볼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또 저자가 아우구스티누스를 빌어 말하듯이 “예수의 인격과 메시지는 옛부터 바뀌지 않았지만 언제나 새로운 아름다움으로 변해왔고 변할 것”이라는 종교적 관용의 자세도 배울 수 있다.

85년 첫 출간. 밀레니엄을 앞두고 11월 미국에서 개정판이 발간됐다. 역자는 김승철교수(부산 경성대 신학과).

〈정은령기자〉r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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