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化가 흐르는 漢字]교예(巧藝)

  • 입력 1999년 12월 14일 19시 39분


불과 30여년 전만 해도 시골의 ‘5일 장터’는 약장수 아저씨에게로 인파가 몰려들었다. 좀 더 큰 읍내쯤 되면 쟁반 돌리기나 줄타기, 借力(차력), 魔術(마술) 등과 같은 재주까지 볼 수 있었다. 간혹 흥을 돋우기 위해 동물을 이용하기도 했는데 주로 말이 등장했다. 말은 유순해 사람과 共演(공연)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우리 조상들은 그것을 馬戱(마희·말놀이), 또는 馬上才(마상재)라고도 했으며 그런 사람을 馬上才人이라고 했다. 지금의 연기자, 좀더 오랜 말로는 광대다. 개화 이후에는 흥행성을 띠면서 曲馬(곡마)라고 불렸다. 그러니까 馬戱니 馬上才, 曲馬는 현재 서커스의 元祖(원조)인 셈이다.

馬上才는 말타기에 능했던 북방 기마민족이 자신들의 재주를 ‘놀음’으로 바꾼 것이 아닌가 생각되며 고려 때 몽골에서 들어와 조선 초부터 대중화된 것으로 보인다. 달리는 말 위에 서기, 눕기, 거꾸로 서기 등 온갖 묘기가 다 있었다.

그 뒤 馬上才는 武藝(무예)의 하나로 중시되기도 했다. 조선 中宗 때 군인들이 步射(보사·달음박질하면서 활쏘기)에만 능하고 騎射(기사·말 타고 활쏘기)에는 어둡자 承旨(승지) 尹希平(윤희평)이 馬上才를 武科의 하나로 삼을 것을 上奏(상주)했다. 이를 계기로 光海君 11년(1619년)에는 최초로 임금의 親臨(친림)下에 馬上才人을 선발하고 訓鍊都監(훈련도감)에서 봄 가을 두번 才人을 선발해 馬上才軍을 편성한 적도 있었다.

巧藝는 서커스의 북한식 표현이다. 조선말대사전(사회과학원 간)은 ‘사람의 육체적인 기교동작을 형상수단으로 사상 감정을 표현하는 예술의 한 형태’로 풀이하고 있다. 당초 12월초 서울에서 공연하기로 했던 북한의 巧藝가 취소됐다. 좋은 눈요깃거리를 놓친 것 같아 섭섭하다.

鄭錫元(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

478sw@mail.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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