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역사이론서 '20세기 사학사'/임상우-박광용씨

  • 입력 1999년 10월 1일 19시 13분


전세계 역사학계에 포스트모더니즘의 도전이 거세다. 과학으로서의 역사학의 종말을 선언한 포스트모더니즘. 지나간 역사를 객관적 사실로 인정할 수 없고 역사학에 객관성이 없다고 비판한다.

역사학은 과연 끝난 것인가.조지 이거스의 ‘20세기 사학사’는 우리에게 이같은 고민을 던져준다. 포스트모더니즘시대 역사학은 어떻게 새로운 탈출구를 찾고 있는지. 한국의 역사학은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지.

한국어판 출간을 맞아 미국에서 잠시 귀국한 번역자 임상우 서강대교수(서양사)와 박광용 가톨릭대교수(한국사)의 대담을 통해 포스트모더니즘시대 역사학의 위상과 미래를 진단한다.

▽임상우〓포스트모더니즘은 기존의 역사학에 과학적 방법론이 없다고 비판합니다. 사실(史實)을 밝혀낼 수 없다는 것이죠. 역사학도 문학과 마찬가지로 허구를 다룰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역사학의 존립 근거를 흔드는 것입니다.

▽박광용〓하지만 저자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시각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역사학의 객관성이 흔들린다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그래도 역사학 자체는 존재한다는 거죠.

▽임〓포스트모더니즘의 도전에 세계 역사학계가 당황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포스트모던 이론가들은 사실(史實)의 실재(實在)를 이론적으로 부정하지만 그 이론에 맞게 역사를 서술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역사학은 정치사와 사회경제사 중심이었습니다. 하나의 통일된 거대담론이죠.지배계급 중심의 역사만이 진실이었습니다.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문화사적으로 역사를 서술하면서 하층계급 여성 식민지 민중과 같이 전체사에 묻혀있던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다원성을 인정하자는 것이죠.바로 신문화사입니다.

▽박〓한국사 전공자의 입장에서 보면 포스트모더니즘은 솔직히 큰 딜레머 입니다.우리는 정치 사회사에서조차 초보단계인데 그것을 뛰어 넘어야 한다는 것이니까요.

또한 우리의 분단 상황도 고려해야 합니다. 우리 역사학은 통일을 지향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북한의 역사학을 포용해야 하고 전체성과 통일성을 유지해야 합니다. 거대 담론을 거부할 수 없습니다.

▽임〓포스트모더니즘의 시각으로 보면 북한의 주체사상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게 아니죠. 오히려 통일을 추구하려면 거대한 역사발전 모델이 있어야 합니다.

▽박〓그것이 바로 우리 사학계가 전체사를 쉽게 버릴 수 없는 이유의 하나입니다. 개인적 견해로는 통일단계까지는 거대담론뿐 아니라 우리 민족의 역사적 특수성을 모두 유지해나가고 그 이후에 과감한 방향전환을 모색하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임〓신문화사 역시 서구 역사학의 발전과정에서 나온 산물입니다. 그것이 우리 역사학에 적용될 수 있을지 생각해야 합니다. 최근 우리사회에서 민족담론이나 진보담론이 난관에 봉착해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신문화사와 같은 제3의 길을 모색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인접한 인문 사회과학이 발전해야하고 신문화사 방법론에 대한 철저하고도 진지한 선행연구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박〓한국의 역사학에 있어 포스트모더니즘의 도전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도 있습니다. 서구 중심의 역사학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죠. 우리의 불교적 성리학적 보편성, 동양적인 것의 특수성을 새롭게 조명하려는 움직임이 그 하나입니다. 초보단계이긴 하지만 신문화사적인 연구성과도 나오고 있습니다.

▽임〓신문화사에 관한 논의가 일회적이거나 상업적인 유행에 그쳐선 안됩니다. 물론 포스트모더니즘은 탈식민성 해방의 논리를 갖고 있습니다. 방금 말씀하신 국내에서의 변화 움직임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분단상황으로 돌아오면 딜레머에 봉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서구에서도 포스트모더니즘 역사학 논의는 결론 없이 뱅뱅 돌고 있는 실정입니다.

▽박〓이 책은 최첨단 역사이론서입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문제제기는 우리도 적극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나 한국적 상황의 딜레머가 있기 때문에 진지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정리〓이광표기자〉kplee@donga.com

▼ '20세기 사학사'

조지 이거스 지음/ 임상우 김기봉 옮김 / 푸른역사 1만2000원

포스트모더니즘시대 역사학의 위기를 진단하고 미래를 전망한 책. 역사학이 전문적인 학문분야로 정착한 19세기말부터 최근까지 서양 역사학의 흐름과 경향 분석을 통해 위기에 직면한 역사학을 전망했다. 저자는 미국의 대표적역사이론가로 버팔로 뉴욕주립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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