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일의 책]'달라이 라마 예수를 말하다'

  • 입력 1999년 9월 5일 11시 27분


▼'달라이 라마 예수를 말하다' 다릴 앙카 지음/류시화 옮김/나무심는 사람 펴냄/252쪽 7800원▼

1994년 9월 중순 어느날 아침 영국 런던 미들섹스대 강의실. 티벳의 영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가 350여 청중 앞에 섰다.

이날 모임은 세계그리스도교 명상공동체가 각국의 명상 수행자들을 위해 마련한 자리. 주최측은 사전에 달라이라마에게 성경의 4복음서에서 뽑은 여덟 구절을 전달하고 “가장 편안한 마음으로 당신의 의견과 느낌을 말해달라”고 부탁했다.

산상수훈과 여덟가지 복에 대한 가르침(마태복음 5장) 겨자씨의 비유와 하느님의 나라(마가복음 4장) 모습의 변화(누가복음 9장) 부활(요한복음 20장)이었다.

달라이 라마는 우선 자신이 기독교인들의 신앙에 ‘의심의 씨앗을 심으려고 온 것이 아님’을 강조했다. 이로써 천주교 성공회 개신교도가 대부분인 청중을 안심시켰다.

그가 마태복음 5장 38∼48절을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 이같이 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라. 하느님은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고루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고루 내리는 분이시라…”

달라이 라마가 말을 이었다. “이 구절을 읽으니 ‘대승집보살학론(大乘集菩薩學論)’으로 알려진 대승불교 경전의 한 구절이 생각납니다. 산티데바는 이렇게 묻습니다. ‘적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는다면 그대는 도대체 누구에게 자비를 베풀 수 있겠는가?”

행사는 사흘간 계속됐다. 명상으로 시작해 달라이 라마가 영어로 성경구절을 읽고 강론한 뒤 공개토론에 나섰으며 찬송 기도 식사로 이어졌다. 다시 침묵명상에 들어가 앞의 순서를 되풀이 했다.

달라이 라마는 강연을 통해 “사람의 감성과 문화 배경이 다양하므로 오직 하나의 ‘길’만이 진리일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불교와 그리스도교는 근본이 같지만 단지 서로 다른 언어로 표현되어 있을 뿐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반대했다. 하지만 그는 자비와 형제애와 용서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두 종교가 닮았다는 점에 동의했다.

그는 ‘본심’을 유머에 담아 내기도 했다. “당신이 기독교인이라면 그리스도교를 통해 영적 성장을 이루는 것이 좋습니다. 진정한 기독교인이 되는 것이 좋습니다. 불교신자라면 순수한 불교신자가 되십시오. 제발 반씩 섞어서 믿지는 마십시오.”

영국 메디오 메디아와 미국 위즈덤출판사에서 낸 초판 제목은 ‘선한 마음(The Good Heart)’이었다. 시인 류시화가 특유의 명상적 감성적 문체로 옮겼다.

오명철<동아일보 문화부기자〉osc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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