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작가 김하기-간첩 깐수 옥중인연 소설로 결실

  • 입력 1999년 8월 10일 19시 31분


김하기(41). 97년 술김에 압록강을 헤엄쳐 건넜다가 ‘국가보안법 위반사범’으로 영어의 몸이 됐던 작가.

정수일(64). 일명 무하마드 깐수. 12년 동안이나 아랍인으로 행세해온 남파간첩. 그런 한편 한국의 동서문화교류사 연구에 적지않은 공헌을 한 석학.

두사람의 기묘한 인연이 역사소설을 탄생시키게 됐다. 지난해 광복절 특사로 풀려난 작가 김씨는 10월 출간을 목표로 역사 추리소설 ‘금강석의 미소’를 집필중. 그가 소설 집필을 마음먹은 데는 구치소에서 만난 정씨의 조언이 큰 역할을 했다.

“입북하기 전 석굴암에 갔다가 안내인의 말에 귀가 번쩍 뜨였어요. 석굴암 본존불의 정수리에 박혀있던 백호광명(白毫光明)은 본디 금강석(다이아몬드)이었는데 그걸 일제가 떼어갔다는 거죠.”

그러나 고대사에 문외한이었던 탓에 소설 집필은 꿈꾸지 못했다. 그러다 구치소의 면회대기소에서 정씨를 만났다. 매일 신문을 주의깊게 읽어온 정씨가 김씨를 먼저 알아보았고, 김씨는 평소 궁금하던 석굴암 본존불 얘기를 꺼냈다.

“석굴암이 지어지던 시기는 신라와 아랍의 교류가 가장 활발하던 시기였소. 아마 금강석이 서역에서 왔을지도 모르지.”

정씨는 김씨에게 자신의 책 ‘신라서역교류사’(단국대 출판부)를 참고자료로 권했다. 출옥후 김씨는 이 책에 실린 풍부한 지식을 바탕으로 ‘금강석…’집필에 매달리고 있다.소설은 석굴암 건립시기와 현대를 오가며 잊혀진 금강석의 행방을 찾아 칭기즈칸 제국, 나치독일까지를 무대로 펼쳐진다.

“구치소에서 만난 정씨는 자신의 행적과 사상적 방황때문에 깊이 고뇌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의 책을 접하니 그가 그대로 묻혀지기에는 너무 아까운 천재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김하기는 정씨의 연구업적을 존중해 사회가 관용을 베풀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조심스레 내비쳤다.

〈유윤종기자〉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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