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작 문제작가]김영민교수 「文化 文禍 紋和」

  • 입력 1999년 1월 11일 18시 52분


지식인 사회에 팽배한 허위의식을 비판하며 학행일치(學行一致), 앎과 삶의 일치를 주장해온 김영민 한일신학대교수. 그의 첫 산문집 ‘문화 문화 문화(文化 文禍 紋和)’는 새삼 우리 시대의 산문, 산문 정신이란 무엇인지 되새겨보게 한다.

식민성을 탈피한 우리 인문학의 구축, 주체성과 자생력의 보양(保養)을 제창해온 저자. 책에 실린 글들은 그의 이런 생각들을 오롯이 담아내면서도 논문처럼 견고하거나 자기방어적이지 않다. 우리 삶이 드러내는 여러 무늬에 진솔하고 섬세하게 다가선다. 종종 현실의 공간을 벗어나 기억의 내력과 꿈의 지평을 배회하며 교과서적 학식과는 또 다른 심미적 교양의 경지를 보여준다.

소쩍새 울음 위로 노오란 달빛도 상큼한 5월의 밤, 우리의 옛 명기(名妓)들을 그리워하며 써내려갔다는 글 한 대목.

‘명기들에게서 무엇을 배우랴. 그들을 배워 대범한 듯 민감하고, 안돈(安頓)한 듯 방황하고, 묶인 듯 자유롭고, 요요(搖搖)한 듯 정숙하여라. 먼 생각에 짧은 말로 절제하고, 깊은 사모의 정을 옅은 미소 속에 선뜻 흘리며, 뭇 남성의 틈을 헤집고 다니면서도 문득 절사(節死)하여라….’

문인화의 정취(情趣)와도 같은 인문학의 향기가 맡아진다. 정보만이 무성한 요즘의 허다한 텍스트들과는 달리, 마음을 다스리고 삶의 뜻을 일깨우는 ‘심학적(心學的) 전통’의 맥박이 느껴진다.

앞과 뒷부분에는 비교적 숨이 길고 무거운 글을, 그 사이에 호흡이 짧고 부드러운 글들을 모았다. 논문과 운문(韻文)의 틈새 사이에서 조금은 버겁게 읽혀지는 그의 글. 쉬 읽히고 쉬 잊혀지는 ‘인스턴트 산문’시대에 그의 글은 그래서, 귀하다. 동녁. 8,000원.

〈이기우기자〉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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