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모리「마지막…」와 박남준「작고 가벼워질때까지」

  • 입력 1998년 11월 2일 19시 12분


푸르른 감들이 노을빛으로 물들어가고, 붉고도 노란 감잎들이 꽃비처럼 우수수 져내리다가, 마침내는 메마르고 앙상한 가지 가지마다 열매들만 주렁주렁 주홍빛 물살을 일으키는 어느 가을날…,

삶과 죽음이라는 그 궁극적인 화두(話頭)에 쿵, 부딪쳐 본 적이 없는지…. 소스라쳐 놀라듯 걸음을 멈춰서서 바닥 모를 깊은 사색에 잠겨 본 적이 없는지….

가을의 끝자락, 겨울의 예감(豫感)으로 괜시리 스산해지는 이 때, 삶과 죽음 그리고 자연과 생명의 뜻을 깨우쳐주며 우리 곁을 찾아온 두 권의 에세이집.

홀로, 외롭게, 죄지은 자처럼 죽어가는 현대인에게 죽음의 위엄과 기품을 되돌려주는 모리 슈워츠교수의 ‘모리의 마지막 수업’(생각의 나무). 그리고 모악산(전북 완주군) 기슭에서 ‘버들치 시인’ 박남준(41)이 띄워보내는 ‘작고 가벼워질 때까지’(실천문학사).

‘…마지막 수업’은 94년 77세가 되던 해 루게릭 병으로 숨진 모리교수가 ‘한사코 삶의 옷자락을 놓치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잠언집. 베스트셀러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의 바로 그 모리교수가 이 생의 마지막 숨을 내쉬며 혼신의 힘을 다해 쓴 책.

삶의 가파른 언덕에서 띄우는 그의 메시지를 들어보자. “바위에 부딪쳐 산산이 흩어지는 파도를 한번 생각해 보게. 비록 파도는 형체도 없이 사라지지만, 바다의 일부였던 그 물결은 결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네. 나는 요즘 사람이 죽는다는 것도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네….”

그는 죽음의 전도사가 아니다. 삶의 스승이다. ‘살아가는 법을 배우십시요. 그러면 죽는 법을 알게 됩니다. 죽는 법을 배우십시요. 그러면 살아가는 법을 알게 됩니다….’

‘항상 좋은 사람인 척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좋은 때가 많은 사람이면 충분합니다. …자신을 가장 가까운 친구로 삼으십시오. …눈물을 흘리는 것도 삶의 소중한 휴식입니다. …우리가 정말로 해서는 안되는 일은 자신을 쓸모 없는 존재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마지막 수업…’이 삶의 곁에 머무르고 있으나 삶 속에서 ‘지워져버린’ 죽음의 제자리를 찾아준다면 ‘작고 가벼워질 때까지’는 우리 삶에서 문명의 때를 씻어내고 넉넉하고 푸근한 자연의 자리를 마련해준다.

시인 박남준. 조그만 텃밭에 열무나 배추를 심고 자신이 좀 덜 먹더라도 애벌레들이랑 같이 먹고, 애벌레들이 많이 먹으면 자신이 좀 덜 먹기도 하는 그런 사람.

그래선지 그의 편지글은 자연에서 맡는 싸아한 내음으로 그득하다. 툭툭 이따금 떨어져 내리는 감 소리에도 가슴 아프다는 시인. 술렁술렁 편히 읽히는 글은 때때로 ‘볕 좋은 날 마당에 널어놓은 빨래처럼’ 눈이 부시다.

그 조촐한 삶의 바람은 무엇일까.

‘해안을 따라 흰 빨래처럼 정결하게 걸려 있는 오징어 건조대를 보며 생각합니다. 나의 삶도 저처럼 푸른 바닷물에 씻어 세상의 바람 끝에 걸어놓고 싶다는, 그럴 수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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