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권영우展,내달 5일까지

  • 입력 1998년 6월 21일 21시 26분


‘백지위임(白紙委任)’

‘종이 작가’ 권영우 화백(72)의 작품은 순백의 향연이다. 그곳에는 기름기나 광택이 없다. 정준모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은 이를 두고 묵향처럼 은은한 젖빛의 해맑음이라고 했다.

작품에 대한 느낌은 모두 관객의 몫. 작가는 관객들이 나름대로 작품을 읽고 해석하기 바란다며 ‘백지위임’을 강조한다.

이번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으로부터 ‘올해의 작가’로 선정된 기념전.네번째를 맞는 ‘올해의 작가’전 가운데 원로 작가가 선정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권화백 개인전으로서는 6년만이다. 작품들은 부채, 빨래줄과 바지랑대, 숟가락, 플라스틱 빈병, 빗, 빨래판, 자동차 번호판 등 일상의 흔한 소재를 순백의 한지로 덮었다. 현대적인 추상화같기도 하고 얼핏 미묘한 규칙성이 느껴지기도 한다.

작가의 설명은 무덤덤하다.

“우연의 발견을 추구합니다. 그림을 보는 사람은 화가가 대단한 미학적 의도를 가진 것으로 여기지만 제 경우는 매우 즉흥적입니다. 제목이 없는 것도 관객들에게 맡긴다는 뜻이지요.”

전시장에서 일어난 일화.

한 어린이가 부채를 덮은 그림을 보고 “꼭 옛날 화석같다”고 했다. 그러자 권화백은 “그렇게 느꼈으면 그뿐”이라며 웃는다. 사실 그의 그림을 마주하면 ‘왜’라는 물음보다 그 해맑은 젖빛에 몸을 담구고 싶다는 은밀한 유혹도 받는다.

권화백은 동양화의 3요소인 지(紙)필(筆)묵(墨)중 종이 자체의 표현 가능성을 탐색해왔다. 그에게 종이는 단순히 그림을 담는 용기가 아니라 나름대로 독창적인 이미지를 표현하는 매체인 셈이다.

권화백은 60∼70년대에 종이에 구멍을 뚫고 선을 그은 추상 형식을 도입,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80년대 중반에는 종이를 찢거나 뚫은 다음 뒷면에서 반투명의 회색이 배어나오게 하는 시도를 했고 90년대는 아예 종이로 주변의 사물을 덮어버렸다.

다음 종이 실험은 무얼까.

“왜 종이냐는 질문을 자주 받습니다. 그러면 종이가 있기 때문이라고 답하지요.다음 작품은 어떨지 나도 몰라요. 다만 나만의 개성을 위해 스스로 공들이다보니 여기까지 온 것 같습니다.” 전시는 7월5일까지. 02―503―7745.

〈허엽기자〉h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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