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음악평론 가작]「80년대 이후의 대중음악…」

  • 입력 1998년 1월 17일 20시 29분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지난 시대에는 관찰과 분석의 대상이 되지 못했던 제재들이 현대사회를 해독하는 필수적인 기제로 대접받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간 역사의 시작부터 함께해온 음악이 중요한 문화 양식으로 관찰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음악은 이에 마땅한 위치를 확보해 왔다. 그러나 음악이라는 이름을 가진 모든 장르가 이러한 대접을 받아온 것은 아니다. 우리의 현실에서 음악은 예술음악과 대중음악의 두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 이 중 예술음악은 늘 앞자리를 차지한 채 경의의 대상이었던 반면 한국의 대중음악은 많은 경우 뒷전이었고 경시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80년대 노래운동과 함께 이루어진 노래동인의 연구는 한국의 대중음악을 ‘노래’의 맥락 속에서 진지한 관찰의 대상이 되게 하였으며 노래동인의 연구와 대중음악 자체가 가진 영향력에 힘입어 한국 대중음악에 관한 논의는 80년대에 상당히 구체적으로 진척되었다. 김창남 이영미를 중심으로 한 노래동인의 활동은 민중가요, 노래운동이라는 말들이 부각되던 80년대의 시대 상황 속에서 그 폭을 넓혀갔으며 자연스럽게 역사적 사회적 구조적 차원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이들은 ‘노래 1집’부터 ‘노래 4집’에 이르기까지 ‘노래는 우리에게 무엇이며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와 같은 노래의 본질적 성격을 끊임없이 재확인하였다. 또한 노래의 역사, 노래문화에 대한 문제제기, 노래운동, 민족음악운동, 대중음악의 계보, 민중가요 대중가요에 대한 구체적 비평 등 노래와 연관된 다양한 주제들을 그들의 그물망 속에 건져내고 있다. 노래동인과 ‘노래’집의 의의는 여기에만 있지 않다. 그들이 ‘노래 1집’의 서문에서 밝혔듯이 ‘너무도 우리의 일상과 밀착해 있어 하나의 인식대상으로 객관화시키기 어려웠던’ 대중의 노래를 사회사적 맥락 속에서 구체적으로 연구하여 이후 대중음악 논의의 토대를 제공하였다는 사실이 더욱 중요하게 평가되어야 할 점이다. 뿐만 아니라 이들의 연구에는 악곡 관련 논의, 즉 음악 내적 분석이 상당부분 포함되어 있다. 이는 노래를 ‘민중의 정서를 담아내는 그릇이자 민중의 역동성과 함께 진보하는 것’으로 파악한 데서 비롯한다. 그러므로 이들에게 악곡 관련 논의는 그릇의 형상을 살피는 인식적 접근임과 동시에 민중의 역동성을 어떻게 현실화할 것인가에 관한 실천적 접근이었다. 이러한 인식과 실천의 동시적 접근이 노래 문화 비판과 더불어 악곡의 전개와 완결성 등에 관한 실질적이면서도 의미있는 언급들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이들의 악곡 관련 분석은 대략 한국 초창기 가요의 원류와 역사를 밝히는 부분과 다양한 분석틀을 사용하여 당대 대중가요를 비평하는 부분 그리고 노래말과 악곡모두의 분석을 토대로음악적 완성도를 평가하는 부분에서 사용되고 있다. 이 중, 특히 당대 대중가요에 대한 구체적인 비평과 음악적 완성도를 논하는 지점에서 이루어낸 성과들은 주목할 만하다. 이 부분에서 대중음악은 음악 내적 분석의 대상이 되는데 음악 내적 분석 또한 가사에 치중되지 않고 노래말과 악곡이 동등한 중요성을 가진다는 인식 아래 곡 자체(노래말과 악곡이 통일된)가 뿜어내는 영향력이 재음미되고 세심하게 관찰된다. 또한 음악 자체로 무의식적인 ‘역동적 정서’가 담보되는 노래에 대한 체계적인 분석의 예를 구체적으로 제시함으로써 대중음악의 ‘음악적 연구’를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도록 하고 있다. 문제는 90년대 후반, 현재의 대중음악이 ‘음악’이라는 용어에 걸맞은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가, 또 진정 그만큼의 대접을 받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이 두 부분 모두 회의적이다. 대중음악의 대세는 변함없이 상업성에 있으며 대중음악에 대한 관심과 언급은 가셌浿 노래말 같은 표피적인 것에서 크게 벗어나고 있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현재의 대중음악에 대한 논의와 연구는 80년대 노래동인이 이루어낸 ‘음악적’ 접근을 이어받지 못한 채 일회적인 가십의 수준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이러한 현상은 90년대 들어 노래운동이 약화되고 상당 부분의 민중가요가 대중음악권에 편입되었기에 이제 대중음악에 관한 의미있는 연구가 불필요해졌기 때문에 발생하는 필연적인 귀결인가? 그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80년대에 확인된 노래의 의미, 대중가요의 의미, 대중음악의 의미는 현재에도 변함없이 유효할 뿐만 아니라 거대 자본과 대중매체를 통해 그 위력이 더욱 막강해진 현재의 대중음악 연구는 오히려 80년대보다 훨씬 더 시급하며 중대하다. 그렇다면 대중음악에 대한 현재의 비생산적 논의의 원인은 우리의 ‘학문적’ 무관심에서부터 찾아 보아야 할 것 같다. 대중음악 연구에 대한 우리의 편견과 게으름을 인정한다면 90년대 말 현재의 대중음악 연구는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가. 우선 80년대 연구에서 보여준 음악 외적(역사적 사회적) 연구와 음악 내적(음악 자체의 형상과 관련된) 연구가 동등하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다. 역사적 연구와 양식적 연구 어느 하나도 덜 중요하지 않다. 음악은 역사적 산물임과 동시에 일정한 양식으로 형상화하여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회사적 맥락과 관련된 관찰과 분석은 80년대의 논의에 힘입어 현재에도 간헐적으로나마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악곡과 관련한 음악 자체에 대한 분석은 90년대 후반으로 올수록 찾아보기 힘들다. 대중음악이 ‘음악’인 이상 음악관련 분석과 논의가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데도 현재의 분분한 논의 속에는 그 당연한 부분이 보이지 않는다. 80년대의 성과를 토대로 대중음악의 ‘음악적인 모습’을 관찰하고 분석하는 것은 대중음악 연구의 편식성을 극복하는데 필수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대중음악 논의는 말초적인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단편적인 지식으로서가 아니라 대중음악의 현재적 중요성에 값하는 ‘음악에 관한 연구’의 한 분야로서 존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노래’를 ‘진정한 의미의 예술’로 만들기 위해서는 ‘진정한 의미의 예술로 대접’하는 것 또한 필요하다. 남은 것은 이제 이것을 어떻게 현실화할 것인가 하는 실천의 문제다. <김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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