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순태,소설집「시간의 샘물」 펴내…현대사 상처 보듬어

  • 입력 1997년 12월 22일 08시 11분


한달이면 두세번은 무등산 너머 고향으로 달음질해가는 작가 문순태(56). 그러나 지친 몸을 이끌고 고향 어귀에 서면 언제나 마음은 죄책감 반 그리움 반이다. 『너는 맨날 우리 고향 사람들 이야기만 쓰고 있드만 그려』 친구들의 심드렁한 말을 「이제 고향 그만 팔아먹으라」는 비아냥이라고 아파하면서도 그의 소설은 여전히 고향을 떠나지 못한다. 담 마주대고 살았던 이웃끼리 총과 죽창을 앞세워 목숨을 내놓으라 악다구니를 해야했던 고향의 지난날. 동학혁명과 6.25,5.18에 스러진 그 무수한 원혼들의 업(業)을 풀어주는 것이 작가로서의 소명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갈등을 씨줄 날줄 삼아 작품을 지어내는 것이 작가의 운명이지만 역사의 회오리를 겪으며 살아온 자연인으로서 그의 소망은 그 갈등이 하나씩 풀려나가는 것이다. 새 창작집 「시간의 샘물」(실천문학)에서 그는 갈등과 반목으로 말라버린 가슴을 적시는 샘물을 터뜨린다. 온 마을 사람들의 식수원이자 마을사람들의 간절한 소원을 풀어주는 영천(靈泉)이었던 거북재마을의 각시샘. 그러나 6.25와중에 경찰에 쫓기던 이 마을출신 노동운동가가 샘가에 피를 쏟고 쓰러진 뒤 각시샘은 흙으로 메워진다. 샘을 다시 찾아내는 것은 43년만에 고향 거북재로 돌아온 전직목사 박지수. 전쟁의 한가운데서 「목숨과 마을 둘 중에 하나를 택하라」는 토벌대들에 떠밀려, 마을을 떠난 사람들은 본의 아니게 멸공주의자가 되고 마을에 남은 사람은 좌익분자로 낙인찍힌 뒤 다시는 한 샘의 물을 나눠마실 수 없도록 갈라서야했던 역사를 아는 그는 상처를 봉합하기 위해 말라버린 샘을 다시 파낸다. 『갈등하는 쌍방이 상대방의 마음자리에 서 보지 않는 한 화해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현대사가 구축해온 갈등구조를 해소하는 일은 멀고도 어렵지만 우리세대가 그 가능성을 열어두고 다음세대가 완성하길 바랄 뿐입니다』 〈정은령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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