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책]유현목 영화감독/「한국영화 발달사」

  • 입력 1997년 5월 13일 08시 36분


『한국영화를 보면 본전 생각만 난다』고 푸념하는 관객들. 적어도 영화 「오발탄」(1960년) 시대에 그런 불평은 없었다. 전쟁의 상처와 독재 빈곤 부패에 짓눌린 현실을 차갑게 고발한 걸작. 「김약국의 딸들」(63년) 「순교자」(65년) 「분례기」(71년) 「장마」(79년)…. 영화감독 유현목(72)이 빚어낸 마흔네개의 분신은 그 자체가 한국 스크린의 역사다. 「한국영화발달사」(책누리·7,000원). 영화학자 유현목이 발품을 팔아 완성한 노작이다. 활동사진극 「의리의 구토」가 등장한 1919년부터 8.15 해방까지 한국영화가 헤쳐온 땀과 눈물의 여정을 기록했다. 당대를 풍미한 원로감독과 스타들이 기꺼이 인터뷰에 응했다. 80년에 출간됐지만 출판사 폐업으로 절판. 유감독은 『나이를 먹어갈수록 세상과 단절된 책의 모습이 자꾸만 어른거렸다』고 설명했다. 지난 겨울 모아둔 자료를 싸들고 제주도 농장행. 어린 자식의 지저분한 낯을 깨끗이 씻긴 부모의 심정일까. 저자는 『논란의 소지가 있는 부분은 새로 고증을 거쳤고 내용도 한결 풍성해졌다』고 말한다. 그러나 한국 영화의 뒷걸음질이 못내 가슴아프다. 구미에서 활동사진이 인기를 끌 즈음 신파극 따위에 가슴을 졸였고 토키영화 시대에는 「벙어리」 무성영화의 신기함에 넋을 앗겼던 우리 관객. 식민지 시대 일제의 견제와 자본의 한계 속에서도 나운규의 「아리랑」이 만들어지고 숨을 헐떡이며 세계조류를 뒤쫓던 모습이 애처롭기까지 하다. 얼굴 반반한 장안의 명기와 카페여급이 여주인공으로 발탁되던 「기생영화」의 요지경은 또 어떤가. 1945년 「진짜 역사」가 시작될 대목에 이르러 저자는 글을 맺는다. 한국영화사의 「상권」으로 봐달라는 주문. 그는 파란만장한 본사(本史)가 펼쳐질 「하권」은 『젊고 유능한 평론가들이 감당해줘야 할 몫』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자신이 마무리짓지 못하는 이유를 계면쩍은 표정으로 털어놓는다. 『유현목이라는 이름이 너무 자주 나오는 것 같아…』 〈박원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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