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名士의 영화보기/에비타]최상의 재료로 최악의 요리

  • 입력 1997년 2월 12일 20시 22분


극소수의 예외는 있지만 히트 뮤지컬의 영화화는 반드시 실패한다는 교훈을 「에비타」의 제작진은 깨뜨릴 수 있다고 믿었던 것 같다. 우선 마돈나라는 팝스타를 주연으로 내세우고 앨런 파커가 메가폰을 잡으면서 올리버 스톤에게 각본을 쓰게 했다. 엄청난 제작비를 투여하면서 양념으로 요즘 뜨기 시작한 안토니오 반데라스를 해설자로 기용했으면 흥행은 보증수표라고 믿었던 것일까. 그러나 최상의 재료들을 배합해서 최악의 요리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을 「에비타」는 실증해 보였다. 영화는 시종 원작인 브로드웨이 뮤지컬 「에비타」의 작곡자인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압도적인 음악에 짓눌려 실종되고 말았다. 엄청난 제작비를 들여 만든 박진감 넘치는 군중신들은 뮤지컬 넘버에 파묻혀 의미없는 밑그림의 역할을 하는데 그쳤다. 이미 「JFK」를 통해 실감했듯이 올리버 스톤의 장기는 냉혹한 사실적 화면구성에 있다. 이것들이 감정에 호소하는 뮤지컬 넘버와 어울릴 수 없음은 처음부터 자명한 일이다. 가령 1943년 페론이 주도한 군부 쿠데타 장면에서 해군사관생도들이 쿠데타군에 무차별 살상되는 장면이 스쳐지나간다. 쿠데타 당시 유일하게 해군이 반대했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관객들에게 이같은 장면은 의아하게만 느껴졌을 것이다. 아르헨티나의 역사를 모르는 관객들에게 대부분의 장면들은 이처럼 무의미하게 흘러간다. 물론 영화의 초점은 에비타라는 주인공에게 모아져 있다. 그리고 그녀를 일방적으로, 우상화는 아니더라도 미화하는 쪽으로 그려냈다. 그러나 이것은 너무나 오랫동안 기득권층에 착취당해온 아르헨티나 민중들에 의해 만들어진 신화(神話)에 지나지 않는다. 실제의 에비타는 보통의 여자들이 지닌 모든 약점들을 골고루 갖춘 보통이하의 여자에 지나지 않는다. 그녀가 노동자의 편을 든 것도 기득권층에 대한 개인적 복수심과 페론을 출세시키기 위한 정치적 책략이 주동기였다. 역사의 진실을 외면한, 그리고 재미마저 결여한 공허한 멜로드라마에 그친 영화 「에비타」에서 그나마 진실에 접근한 부분이 있다면 에비타역의 마돈나가 실제인물 에비타처럼 매력없고 볼품없으며 연기마저 못한다는 점이다. 정진수<연극협회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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