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윤용만/만우절

  • 입력 2002년 3월 31일 18시 52분


믿거나 말거나 오늘은 제438회 만우절이다. 왜 올해가 438년째 만우절인가 하니 프랑스에서 신·구교간 대립이 치열하던 1560년 열살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 샤를 9세 때문이다. 그는 1582년 그레고리우스 13세 로마 교황이 선포한 그레고리력에 앞서 1564년 새해의 시작을 1월1일로 정했는데, 과거와 같이 4월1일에 신년 선물을 교환하는 이들을 ‘4월의 물고기’라며 놀린 데서 만우절이 비롯됐다. 만우절 풍습은 이후 1751년 영국이 그레고리력을 정식으로 채택한 이래 더욱 널리 퍼졌고 미국 식민지까지 전파돼 오늘에 이르렀다.

▷우리나라에선 만우절이 갈수록 썰렁해지는 느낌이다. 국적 불명의 밸런타인데이나 화이트데이 등을 이벤트화해 잇속을 챙기는 상혼이 대단한 우리나라에서 만우절은 별로 장사 가치가 없는 듯하다. 최근 들어서는 만우절 장난전화도 크게 줄었다고 한다. 전국 각 경찰서와 소방서에 전화 신고 내용이 모두 녹음되고 전화번호 가입자가 바로 확인되는 시스템이 설치돼 있는 데다가 장난전화시 발신자 전화번호 추적으로 공무집행 방해 등을 적용하는 등 강력 대응키로 한 당국의 방침이 주효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기야 요즘 주변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이 죄다 코미디이고 365일이 모두 만우절처럼 느껴지는 터에 굳이 만우절이라고 해서 유별날 이유도 없을 것이다. 대통령 주변과 야당 당수를 둘러싼 ‘내 것은 꼭꼭 감추고 네 것은 철저하게 들춰내는’ 여야 공방이나 몇몇 대선 후보들에게 자금을 지원해준 것에 대해 ‘기억이 안 난다’던 집권당 전 최고위원의 오리발, 가수 유승준의 ‘군대 가겠다’고 한 거짓말에 이르기까지 이제는 웬만해선 국민을 놀래주기도 쉽지 않을 정도다. 각종 선거를 앞둔 요즘 정치판에서 나도는 온갖 말들을 곧이 곧대로 믿을 국민은 또 얼마나 될까?

▷만우절인 오늘 악의 없는 거짓말에 한번 속아넘어가 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각박해져 가는 인심 탓인지 한번 속아 주고 웃어 넘기는 넉넉함이 우리 사회에서 사라진 것 같아 아쉽다. 가계 부채가 사상 최고치인 335조원으로 가구당 2300만원씩 빚을 지고 있는 국민에게 대통령이 되면 속시원하게 부채를 탕감해 주겠다고 거짓말 같은 공약을 내놓을 대권후보는 어디 없을까? 옛날에는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농가 부채를 다 탕감해 주겠다던 대통령 후보도 있었는데….

윤용만 객원논설위원 인천대 교수·경제학 ymyoon@incheo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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