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포커스]펀드매니징 ‘스타’ 지고 ‘팀’ 뜬다

  • 입력 2002년 3월 25일 17시 19분


서울 여의도 주민 김석동씨(55)는 1999년 10월에 높은 수익률을 낸다는 ‘스타 펀드매니저’의 이름을 따서 만든 ‘○○○펀드’에 2억원을 투자했다.

김씨는 주가가 폭락해 원금이 절반으로 줄어들자 한숨으로 세월을 보내다가 최근 주가가 올라 원금이 회복되자 25일 오랜만에 투신사 객장을 찾았다.

“이 돈을 모두 찾아서 다른 펀드에 넣으려는데 요즘 잘 한다는 펀드매니저는 누구요?”(김씨)

“손님, 요즘은 사람 이름을 딴 펀드는 없고 펀드 운용도 한 사람이 아니라 팀이 합니다.”(객장 직원)

투신사들의 펀드 운용 방식이 변하고 있다. 펀드매니저 한 사람이 모든 권한을 행사하던 ‘스타 펀드매니저’ 시대가 저물고 있는 것이다. 대신 애널리스트, 펀드매니저, 리스크 관리팀이라는 독립된 세 조직이 역할을 분담하고 서로를 견제하며 펀드를 운용하는 ‘팀 펀드매니징’ 전성시대가 왔다.

▽스타와 팀〓대체로 2000년 이전에는 펀드매니저가 많게는 수십 개 펀드를 담당하면서 여기에 투자할 종목을 직접 고르고 사고 팔기도 스스로 했다. 펀드 운용에 문제가 없는지도 스스로 챙기고 고객도 직접 관리했다. 특히 1999년 증시가 뜨자 스타 펀드매니저가 마케팅에 동원됐고 투자자는 펀드매니저를 보고 돈을 맡겼다.

그러나 2000년 1월 이후 ‘수익률 100%’를 내걸고 모집한 펀드가 원금을 축내자 투신사들이 부담을 느꼈고 담당 펀드매니저들도 하나둘 회사를 그만뒀다. 일부 펀드매니저가 규정을 어기고 자의적으로 펀드를 운용한 사실도 드러났다. 스타의 이미지에 힘입어 돈을 모은 회사는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증시 환경도 변했다. 산업구조가 복잡해졌고 기업에 대한 정보도 주체할 수 없이 많아졌다. 코스닥을 중심으로 종목도 많아졌고 펀드 수와 펀드 자산도 커졌다. 김영수 튜브투자자문 사장은 “이런 상황에서 개인 중심의 펀드 운영은 한계를 드러냈고 자산운용의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퍼졌다”고 말했다.

팀 체제의 경우 우선 애널리스트가 투자 종목군을 만든다. 펀드매니저는 이 중 어느 종목을 언제 얼마나 사고팔지를 결정한다. 펀드 운용이 법이나 규칙을 어기는지는 ‘리스크 관리팀’이나 ‘컴플라이언스(규정준수감시)팀’이 살펴본다. 투자자는 펀드매니저 개인이 아닌 회사와 개개 펀드의 실적을 보고 투자해야 한다.

▽이런 팀 저런 팀〓팀 체제의 가장 큰 특징은 리서치 기능을 강화한 것. 대부분의 투신운용사가 별도의 리서치팀을 두고 있다. 미래에셋투신운용은 리서치팀을 최근 ‘운영전략센터’라는 별도의 법인으로 독립시켰다.

펀드매니저의 권한은 줄어들었다. 삼성투신운용의 경우 매일 오전 7시 애널리스트와 펀드매니저 등 50여명이 회의를 열고 그날의 투자 전략과 투자종목, 사고팔 가격 등 펀드 운용의 모든 것을 함께 결정한다. 펀드매니저는 미팅에서 종목과 투자전략 등에 대한 의견을 낼 수 있지만 회의에서 결정되지 않은 주식을 마음대로 사거나 팔 수 없다.

대한투신운용은 애널리스트가 선정한 종목군이 상장종목 130여 개, 등록종목 130여 개나 돼 다른 회사보다 펀드매니저가 종목을 고르는 재량이 크다. 이기웅 주식운용본부장은 “수익률을 높이려면 펀드매니저가 적극적으로 자산을 운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투신운용의 펀드매니저는 주식운용본부장이 허락할 때에만 투자 종목군에 없는 주식을 살 수 있다. 이 회사에는 펀드매니저의 주문을 받아 하루 종일 특정 주식을 가장 좋은 가격에 사고파는 일만 하는 트레이딩팀이 따로 있다.

성금성 현대투신운용 주식운용본부장은 “자산배분 종목선정 펀드관리 컴플라이언스팀이 모든 펀드에 개입할 수 있도록 조직화해 인력을 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튜브투자자문 등 소규모 투자자문사들도 팀 체제를 도입하고 있다.

▽‘무늬만 팀’이어서는 안돼〓팀 체제에 대한 반론도 있다. 개인 중심의 운용 방식을 고수하며 높은 수익률을 올리는 것으로 이름난 김자혁 동양투신운용 상무는 “경험이 많고 능력이 출중한 펀드매니저가 애널리스트 등의 보조를 받아 책임지고 펀드를 운용하는 것이 빠르고 효율적으로 고수익을 올리는 데 적절하다”고 말했다. 그는 “일부 회사는 내세울 만한 펀드매니저가 없고 오로지 ‘책임회피용’으로 팀 체제를 표방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우재룡 한국펀드평가 사장도 “한두 사람에게 권력이 집중된 형식적인 팀 체제는 잘 돌아가는 개인 운용 방식보다 위험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애널리스트와 펀드매니저, 리스크 관리팀이 서로를 실질적으로 견제하고 감시할 수 있어야 팀 체제의 강점을 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신석호기자 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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