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I는 파키스탄 군사정권에서 ‘군 내부의 군’으로 불리면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해온 조직. ISI는 마드레샤(이슬람 학교) 출신들인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이 정권을 잡을 때까지 군사고문관을 파견하며 아프가니스탄 내 각종 정보를 수집해왔다.
1994년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남부지역을 장악해 주요세력으로 떠올랐을 때 탈레반 지도부를 불러 파키스탄 정부 및 종교지도자들과 만나게 하는 등 그동안 파키스탄과 탈레반을 잇는 연결고리 역할도 해왔다.
그러나 페르베즈 무샤라프 대통령이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격에 적극 협력하는 정책으로 돌아서면서 ISI는 미국에 협력해 탈레반에 대한 모든 정보를 제공해야 할 것인가, 아닌가의 기로에 선 것이다.
ISI에는 친탈레반 경향의 장교들이 많다. 9월말에는 ISI 소속 장교 3∼5명이 아프가니스탄으로 들어가 미국의 공격이 임박했음을 알려주기도 했다. 이들은 탈레반의 거점인 칸다하르를 방문, 탈레반이 미국의 공격에 대비해 방어태세를 구축하고 전략을 세우도록 도왔다는 것이다.
무샤라프 대통령은 이 소식을 듣고 격노한 것으로 전해졌다. 무샤라프 대통령이 7일 ISI 최고 책임자를 전격 경질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현지 소식통들은 분석한다. 이날 군 인사에서 ISI를 이끌던 에흐무드 마흐모드 중장이 전격 예편됐다. 또 육참총장을 겸하고 있는 무샤라프 대통령의 왼팔이자 군 제2인자인 무자파르 후세인 우사마니 육군 참모차장도 옷을 벗는 등 군장성 10여명이 경질됐다.
이들 장성들은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격과 무샤라프 대통령의 대미협력에 대한 항의표시로 자진 사퇴했다고 파키스탄 언론들이 보도하기도 했으나 쿠데타를 모의했다는 설도 끊이지 않고 있다.
그 직후 이슬라마바드에 있는 육군 참모본부에서 원인 모를 화재가 발생하는 등 군 내부의 이상징후도 나타났다.
이처럼 군이 술렁이자 12일 무샤라프 대통령은 ISI를 겨냥, “정보기관은 정치에 관련된 정보가 아니라 테러와 분파주의자들의 폭력에 대한 정보 수집에 치중하라”고 특별지시하면서 경고를 보냈다.
현재 ISI가 안고 있는 가장 큰 고민은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격에 얼마나 협력할 것인가 하는 점. 무샤라프 대통령은 미국에 대한 전폭적인 협력을 천명했으나 ISI를 비롯한 군은 여전히 난색을 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93∼95년 ISI를 이끌었던 자베드 아쉬라프 장군도 최근 파키스탄의 영자지 ‘더 미러’와의 인터뷰에서 “탈레반은 미국의 지원 아래 러시아와 싸우면서 스스로 컸다”며 “ISI는 탈레반을 탄생시키는데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는 ISI가 미국에 대해 적극적인 정보제공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로 해석되고 있다.
<이슬라마바드(파키스탄)〓이종환특파원>ljhzip@donga.com